정초다. 이맘때는 ‘덕담’이 제철이다. 무해하고 기분 좋은 기원들이 눈길마다 혀끝마다 풍성하게 피어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흔하지만 실패 없는 기본 찬이다. ‘부자 되세요’, ‘건강하세요’, ‘한 해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를 적절히 섞으면 더욱 맛깔스럽다. 스스로 다지는 새해 각오 또한 따지고 보면 셀프로 즐기는 덕담이 아닌가. 더 사려 깊은 부모가 되자, 더 다정한 자녀가 되자, 취직하자, 승진하자, 건강해지자.
기원의 말의 배후에는 확실함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 우리는 모두 불확실한 상태를 싫어한다. 일, 관계, 건강, 재정이 모두 든든한 안전지대에 놓이기를 희망한다. 제각기 처지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토록 빤한 덕담이 무난히 통용되는 것도 이런 바람이 워낙 보편적인 데 있을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들이 그만큼 불확실성의 위협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네 처지는 조상님들보다 더한 듯하다. 21세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가 어떤 시대인가.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해 예측이 불가능한 시절이 아닌가. 로봇, 인공지능, 비트코인, 4차 산업혁명이 언제 어떻게 내 삶을 흔들지 몰라 불안감을 안고 속수무책 지켜만 본다. 조상의 오랜 지혜로 즐겁게 견딘 삼한사온은 온난화로 폐기처분당할 기세다. 미세먼지도 낯선데 초미세먼지까지 따지라고 한다. 내일이 막막하고 마음이 불안하기로 인류사에서 전례가 없는 이 시대, 불확실성 위에서 초조하게 흔들리는 건 우리의 숙명처럼 보인다.
독일의 철학 카운슬러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이러한 인식에 제동을 건다. 현대인들이 불확실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효율과 효과를 지상명제로 안착시키고, 사전예측과 해결이 언제나 가능할 것처럼 가르친 결과라고 진단한다. 저서 <방황의 기술>에서 그는 우리가 불확실성 위로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다면 의미있게 잘 헤매는 기술을 익히자고 말한다.
그 출발은 모든 확실하고 당연한 것들을 의심해보는 것이다. 평범한 삶은 당연한가? 선악의 구분은 당연한가? 각자에게 ‘나’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정말 당연한가? 현실인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런 작업이 얼핏 정신승리의 요설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앞날 모를 항해가 우리의 운명이라면, 불안에 마음 졸이기보다 파도타기를 즐길 줄도 알게 되는 게 헛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