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인간관계 필살기

등록 2017-08-17 10:34수정 2017-08-17 10:59

일러스트 홍종길 기자
일러스트 홍종길 기자

연쇄살인범이 연쇄살인범을 쫓는 미국 심리스릴러 드라마 <덱스터>의 한 장면.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과 부딪히는 주인공 덱스터가 한마디 한다. “나는 어르신들이랑 잘 지낸다.” 그가 털어놓는 비결은 ‘상대가 흥미로운 고대 풍습을 지켜가는 미지의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만난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의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로부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동네 시끄러운 별난 일을 연거푸 벌이면서도 지역 어르신들과 잘 지내는 비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는 상대가 낯선 나라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쉬워진다고 대답했다.

사람에 대한 실망과 낙담은 서로가 동질적일 거라는 가정이 깨어지는 순간에 찾아온다. 마주한 누군가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건, 대부분 그들이 기본적인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기본’의 범위가 사람마다 중구난방이라는 데 있다. 누군가에게는 친근감의 표현인 말이 나에게는 무례한 오지랖으로 다가오고, 누군가에게는 배려와 예의인 것이 나에게는 섭섭한 거리두기가 되기도 한다.

상대방을 외계인이나 외국인으로 보는 건 이럴 때 아주 유용한 기술이라고 할 만하다. 동질성이 아닌 이질성에서부터 관계를 출발시켜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동질성, 즉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날 무시해서 저러는 거겠지’,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김치를 잘 먹지’와 같은 암묵적 편견과 속단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외국인 에이(A)씨는 이런 매너를 잘 모르는구나, 그가 생각하는 매너는 뭘까?’, ‘외계인 비(B)씨는 파김치는 싫어하면서 치킨 무는 잘 먹는구나’와 같이 가치판단 없는 담백한 관찰, 나아가 호기심이 자리잡는다. 이렇게 되면 서로 간의 공통점은 어쩌다 발견하는 반가운 선물이 된다. 예상을 벗어난 상대방의 반응에 속을 긁히고 부대낄 필요도 없다.

이는 어르신뿐 아니라 상하좌우 어느 연령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얘기다. 몇 마디 나누어보다가 좌절감이 밀려오면 상대방을 외계인이나 외국인이라고 상상해보자. 좋은 대화, 좋은 사귐은 서로를 이질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