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국에 나가 있는 절친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에스엔에스(SNS)에 생일 기념 외식 사진이 올라 왔기에 호들갑스레 축하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정성을 들여 축하 글을 따로 썼던 예년과 달랐지만, 이번엔 그냥 그렇게 했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 어련히 내 맘 알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며칠 후 간만에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대화를 걸어 온 친구는 댓글만 ‘틱’ 남기는 게 어디 있냐며 농담 반 진담 반 투정을 부렸다. 인스타그램에도 축하 인사를 달고, 페이스북에도 다시 또 댓글 남겼다고 항변하자, 그는 대꾸했다. 그건 그냥 댓글일 뿐이잖아. 직접 얼굴이나 목소리는 듣지 못해도, 최소한 실시간 메시지라도 주고받는 게 진짜 소통 같지 않아?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물론, 축하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그렇지만 상대에게 내 진심은, 내가 적은 댓글 한 줄 이상 전달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딱 그만큼의 성의를 들였으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8800㎞의 지리적 거리와 그에 따른 상당한 시차가, 날이 아니라 해를 헤아리는 시간에 걸쳐 가로놓여 있는 관계에서, 실체를 보여주려 애쓰지 않은 진심이 어떻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만하면 충분했던 거 아니냐’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달 초 참여한 ‘느슨한 공동체의 향방’을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인상 깊었던 얘기가 있다.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누군가 나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게 마음 쓰이고,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안타깝다면, 말만 하며 발을 동동 구를 일이 아니라 실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확실히 표현하라는 조언이었다. ‘이를테면 기프티콘이라도 보내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마음에 콕 와 박혔다. 그것은 뇌물로써 죄책감을 덜라는 얘기가 아니다. 막연한 이심전심 인지상정의 교착상태에 빠져들지 않도록 신경 쓰라는 얘기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는 댓글이 아닌 인터넷 화상 통화로 축하를 전하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동료의 일을 나누어 분담할 수 없다면 커피 한잔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주는 것이 좋겠다.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혼자만의 진심은 결국 어떤 순기능도 하지 못한다. 나한테 쉽고 안이한 타협점에 머무르기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전할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이유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