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보면 주변에 그런 타입의 사람 한둘씩은 있다. ‘불친절한 옷가게에 환불하러 갈 때 함께 가달라고 부탁할 만한 사람’ 말이다. 마치 가면을 바꾸어 쓰듯, 필요한 시점에 딱 필요한 수준으로 화를 내는 법을 기가 막히게 잘 아는 능력자들. 그들은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전략적으로 화를 장착할 줄 안다.
실제 생활에서, 화내기는 사실 만만한 일이 아니며 순전히 감정 반응의 영역에만 속하는 일도 아니다. 이성이 개입하는 부분도 생각보다 크다. 과도한 강약약강의 태도를 비꼬는 ‘선택적 분노조절장애’라는 말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 알맞게 화내기는 우리가 이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화내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 끙끙거리며 혼자 속으로 삭인 끝에 화병이 나든가, 느닷없이 폭발해서 퍼부어대다가 관계를 복구 불능 수준으로 망가뜨리고 후회하기 일쑤다. 올가을 진행한 직장인 대상 수업에서 수강생 도토리(별명)씨가 소개한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한 잘 화내기의 기술’은 그런 이들에게 유용해 보인다.
첫째, 상대의 행동을 기다리며 점점 저기압이 될 것 같으면 웃으며 먼저 가볍게 말해버린다. ‘어제 대리님이 놓고 가신 초콜릿 잘 먹었어요’라는 인사말을 기다리기보다, ‘어제 내가 준 초콜릿 잘 먹었어요?’라고 먼저 묻는 것이다.
둘째, 화내기의 순서를 세운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할 때 ‘이대로라면 화가 날 것 같다’고 경고한 뒤, 시간을 주었다가 한 번 더 고지하고, 마지막에 진짜로 화를 내는 3단계를 밟아나간다. 상대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꿍하니 기다리다가 한방에 100%를 터뜨리기보다 훨씬 덜 소모적이다.
셋째, 3단계의 사이사이, 화나는 사안에 골몰하지 않는다. 평소 혼자 온전히 충족할 수 있는 관심사나 취미를 만들어놓는 게 선결과제다. 신경을 분산시킬 곳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도토리씨는 인간관계란 화분과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 화분만 들여다보면서 거기에다가만 물을 들이부으면 죽어버리거든요. 내 할 일 하면서 두루두루 적당히 물을 줘야죠.”
삶의 지반을 단단히 다져주는 일상기술들이 다 그렇듯이, 화내기의 기술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다. 스스로 어떨 때 유독 예민해지는지, 어디에 관심을 쏟을 때 마음이 가라앉는지 곰곰이 살펴보는 것, 그곳이 바로 잘 화내기의 출발선이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