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해질녘 남편과 산책하던 조땡땡씨는 공원 화장실에 들렀다. 낡은 수세식 화장실은 종일토록 데워져 마치 찜통 같았다. 조땡땡씨는 가운데 칸으로 들어가 서둘러 용무를 마친 뒤 문을 열고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걸쇠가 풀리지 않았다. 문을 붙잡고 잠금장치를 밀면서 돌려보고, 당기면서 돌려보고, 45도로 들면서 돌려보고, 수직으로 내리누르면서도 돌려보았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휴대폰을 찾았다. 없었다. 금방 다녀오겠다며, 남편 손에 건네줬던 게 생각났다. 조땡땡씨는 하릴없이 문짝과 씨름하다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좌변기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 후 누군가 화장실로 들어왔다. 황급히 도움을 청했다.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멀리서 기다리던 남편도 달려왔다. 공원관리소 사람도 불려 왔다. 사람들은 이렇게 해보라느니 저렇게 해보라느니 떠들며, 저마다 앞으로 나서 문을 흔들고 밀고 당기고 하다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물러섰다. 이윽고 119 구조대가 도착했다.
“안 되겠는데. 뜯어내야 하나.”
문을 열어보려 애쓰던 구급대원들도 결국 땀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소방관이에요?” “아니야, 구급대원이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동네 꼬마들이 와글거리며 말을 걸었다. 더위와 패배감에 지친 어른들은 한마음으로 역정을 냈다. “또 들어왔니? 방해되니 나가라니까.”
꼬마들은 돌아서며 웅얼거렸다. “우린 그거 열 줄 아는데.”
“뭐?” “두 번째 칸이 원래 잘 그래요. 그 칸은 열림 방향 말고 잠금 방향으로 세차게 파팍! 이렇게 돌리면 되는데.” “너희가 어떻게 알아?” “우린 다 해봤어요. 팍 아니고 파팍이에요.”
거의 혼절할 지경이 되어 있던 조땡땡씨는 비틀비틀 일어나 땀에 젖은 손으로 잠금쇠를 다시 잡았다. 열림 방향 말고 잠금 방향으로, 힘을 주어, 파팍!
그 후로 조땡땡씨에게는 두 가지 원칙이 생겼다. 첫째는 어린이들의 의견도 귀담아들어본다는 것이다. 논리도 선입견도 없이 닥치는 대로 다 해보는 그들이 오히려 답을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고장 난 데 적혀 있는 지시문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평가한다는 것. 열림 방향이 잘되지 않으면, 반대 방향으로도 한번 힘을 주어보자. 밑져야 본전, 그대로 닫혀 있을 게 아니면 뜻밖에 활짝 열려줄지 모를 일이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