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텔레비전 소리에 은근히 고통 받는다. 즐겨 시청하시는 드라마는 내 취향이 아니고, 한껏 올린 볼륨은 성가시기 그지없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한숨을 돌리며 생각한다. ‘어휴, 함께 살았으면 어쩔 뻔했어.’
그러나 이는 부당한 가정이다. 상시적인 동거는 하루이틀의 방문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부모님과 함께 살 상황이 되면,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규칙을 만들었을 것이다. 공용공간에서는 어떤 볼륨이 좋은지, 이어폰을 사용할 시간대는 언제인지 등등. ‘김치로 안면부를 가격하며 새되게 악을 써대는 앙칼진 시어머니가 나오는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는 식의, 내 욕심 다분한 조항까지 끼워 넣을 수야 없겠지만 말이다.
20대 후반의 직장인 휴일(별명)씨는 함께 살기의 달인이다. 가족, 친구, 형제, 연인,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보았다. 이른바 ‘치사함 보존의 법칙’에 기반을 둔 기술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그의 기술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다. 함께 살려면 언젠가 치사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함께 살기의 성공 여부는 치사해지는 시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함께 살기 전에 먼저 공동생활 수칙을 정하는데, 그 단계에서 진짜 있는 힘껏 치사해져야 해요.”
이기적으로 굴라는 게 아니다. 치사할 정도로 깨알같이, 예상되는 일거수일투족을 쪼개고 구체화해 수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요리한 사람은 다음 사람을 위해 부엌을 정리한다’라는 문구를 보자. 점잖고 보기 좋지만, 공식 수칙으로는 불합격이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은 키친타월로만 닦아놔도 되지만 눌어붙은 찌꺼기가 있으면 수세미로 설거지한다’, ‘유분 없이 끓인 냄비는 아크릴수세미로만 닦아도 되지만 그 외에는 무조건 세제를 쓴다’ 등 항목과 상황을 쪼잔하게 따져 구체적인 지시로 바꾸는 것이 좋다.
휴일씨는 말한다. “이 정도로 분명히 정해놓지 않으면 서운함이 쌓이다가 결국, 사람이 치사스러워지더라고요.”
어차피 한번은 치사스러워져야 한다면 사람이 아닌 수칙에서 그러는 게 낫다는 것이다. 기계적인 조삼모사의 선택을 넘어 향후의 원만한 관계까지 보살피는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데면데면한 셰어하우스 입주민 사이에만 적용할 바가 아니다. 가까운 가족이나 부부, 룸메이트 등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라면 시급히 도입해보면 좋겠다.
이유미 기술감독(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