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
1945년 2월 미·소·영 3국 정상들이 얄타에서 맺은 밀약 중에는 일본이 점령했던 사할린 남부와 쿠릴열도를 소련에 넘겨주며, 만주의 항만과 철도에 대한 소련의 권익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소련의 대일본전 참전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때 한반도 남북분단 점령 밀약도 이뤄졌고 38선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소련의 대일참전 필요성은 사라졌으나 소련은 일본 항복 직전에 재빨리 참전해 실리를 챙겼다. 홋카이도 동북쪽 쿠릴열도 남단의 하보마이, 시코탄, 에토로프, 구나시리 등 일본의 ‘북방 4개’ 섬이 그때 소련에 넘어갔다. 56년 소련과 일본은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11년간 끊겼던 국교를 회복했다. 그때 소련은 하보마이 시코탄 2개 섬 반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받지 않았다. 미국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에 따르면 냉전시대 미국은 2개 섬 반환을 기화로 일본이 소련에 접근하는 걸 경계해 “2개 섬 반환으로 소련과 타협한다면 오키나와를 돌려주지 않겠다”고 위협했다.(11월27일 칼럼 ‘풍고계’)
그때 미국 따라 2개 섬 반환에 반대한 일본내 정치세력이 요시다 시게루 계열이었다. 당시 하토야마 이치로에게 정권을 빼앗긴 요시다쪽은 4개 섬 일괄반환을 주장했다. 반공주의자였던 기시 노부스케 자민당 간사장은 반요시다파 입장에서 하토야마를 지지했다. 그 기시의 외손자가 아베 신조 현 일본총리고, 요시다의 외손자가 아소 다로 외상이다. 제1야당 민주당 실세 가운데 한 사람 하토야마 유키오는 당시 총리 하토야마의 손자다. 그들은 지금도 2개 우선반환이냐 4개 일괄반환이냐를 두고 싸우고 있다.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달리 보면 별로 변한 게 없다.
그런데 일본이 북방 4개 섬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소련 해체 뒤 15년. 혼돈과 대격변을 거친 러시아는 지금 착실히 힘을 키워가고 있다. 강압통치와 여전한 가난에 시달리곤 있으나, 나름대로 질서를 회복하고 석유·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을 토대로 재기하고 있다. 중국, 중앙아시아 옛 연방소속국들과 상하이협력그룹을 형성해 미국 일극체제를 견제하며 인도와 이란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스티븐 코언 뉴욕대 교수는 지난 7월 <네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러시아의 기력회복과 함께 미-러 간에 새로운 냉전 기운이 싹트고 있다고 경고했다.(<저팬 포커스> 12월2일 재수록)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핵보유 대국으로 부활하고 있는 러시아가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유라시아정책에 편승해 실리를 챙기고 있는 일본에 호의적일 리가 없다.
코언 교수는 러시아를 미국 아류국으로 성급히 개조하려던 미국의 정책 실패가 러시아를 반미 쪽으로 몰아갔으며, 푸틴의 강압통치를 사실상 굳혀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수의 러시아인들은 그때의 혼돈과 굶주림, 그리고 패배자로 몰리면서 입은 자존심의 상처를 잊지 않고 있다. 지금 그들은 나토 확대와 미사일방어(MD) 구상,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의 ‘색깔 정변’ 지원 등으로 미국이 러시아 해체까지 노리고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러시아내 미국 호감 여론은 5%대다. 이라크 침공은 그 복사판이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물러난 데 이어 존 볼턴 유엔대사도 물러난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의 시대는 가고 있고 9.11사태 이후 미국의 네오콘적 세계경영에 올라타 기세를 올렸던 한국 일본의 우익 네오콘들의 시대도 필경 기울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면 한반도는, 지금 이대로 간다면 다시 그 대치전선의 한복판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우익은 새로운 모습으로 군림할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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