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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미·일이 눈감아온 일제 범죄 ‘피해자’ 한국은 아직도 아프다

등록 2007-07-06 18:50

한승동의 동서횡단

규마 후미오 일본 방위상이 입 한번 잘못 놀렸다가 결국 물러났다. 그는 지난달 30일 레이타쿠(여택)대학 강연 때 1945년 8월 미군의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에 대해 “어쩔 수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가 ‘파면’ 얘기까지 나오자 다음날 해명했고 3일 다시 사표를 내 즉각 수리됐다.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이 몹시 궁한 모양이다.도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일본이 (2차대전) 전후(戰後) 독일처럼 동서장벽으로 갈라지지 않은 건 소련의 침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쟁에 이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너무 끈질겼다.(항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소련도 나올(참전할) 가능성이 있다. 소련과 함께 갈라놓은 베를린 꼴이 될까봐 일본이 진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원폭을 히로시마(8월6일)와 나가사키(9일)에 떨어뜨렸다. …일본도 항복할 것이고, 그러면 소련의 참전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다행히 (전쟁이) 8월15일에 끝나 홋카이도는 무사했으나, 자칫 소련에 빼앗길 뻔했다. …원폭이 떨어져 나가사키는 참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비참한 피해를 당했지만 그래도 그걸로 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한 지금, 어쩔 수 없었겠구나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라가 두 동강 나느니 차라리 핵폭탄 맞은 쪽이 더 나았다는 얘긴데, 지나친 비유였나. 어쨌거나 2차대전 끝나고 두 동강 난 것은 일본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조선이었다. 규마 방위상의 사고방식을 확장하면 미국은 일본을 구하기 위해 조선 반쪽을 소련에 내준 셈이 된다. 1945년 2월4~11일 미국, 소련 정상이 얄타에서 독일 항복(그해 5월7일) 뒤 2~3개월 내에 소련이 일본을 공격하기로 밀약한 데 따른 것이다. 원폭 개발 뒤 미국은 생각이 달라져 소련의 대일 참전을 막으려 했지만 소련이 그냥 있을 리 없었다. 8월8일 대일 선전포고를 한 소련이 물밀듯 만주와 북한으로 진주했다. 미국은 북위 38도까지만 차지하도록 가이드라인까지 설정해 주었다.

일본은 러-일 전쟁 때 빼앗은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땅과 홋카이도 북부의 작은 섬 4개를 소련에 내주었으나, 19세기에 개척한 홋카이도는 지켜냈다. 미국 덕에.

테사 모리스-스즈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의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산처럼)에는 일제시대에 사할린 탄광에 끌려가 지금까지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4만여 조선인들의 비극이 나온다. 모리스-스즈키는 비극이 그들을 하루아침에 내버린 일본의 이기와 미국의 무관심 때문이었음을 지적하고 무심한 한국한테도 책임이 있다고 썼다.

그는 지난달 19일 〈재팬 포커스〉에 실은 글에서, 보수 〈요미우리신문〉이 펼쳐온 전범 다시보기 캠페인이 조선 등의 식민지배 피해와 일본군 위안부 등 여성에게 저지른 일제의 범죄행각에는 눈을 감았다고 비판하면서, 미국이 전후 일본전범들을 단죄한 도쿄 전범재판에서 먼저 그 문제를 완전히 누락시켰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전후 일본의 뒤틀린 과거사 인식의 토대는 미국이 깔아준 셈이다.

우리에게 전후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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