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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미군의 동아시아 흔적인 ‘위안소’
피해자 한·일의 부끄러운 답습

등록 2007-08-03 18:37수정 2007-08-03 18:58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신일본 여성을 구함. 숙소 의복 음식 일체를 지급함.”

패전 직후 일본 내무성은 ‘외국군 주둔지의 위안시설에 관한 내무성 경보국장 통첩’이라는 것을 각 현에 발령했다. 이렇게 해서 ‘레크리에이션·위안협회(RAA: Recreation and Amusement Association. 일본명은 특수위안시설협회)’가 만들어졌고 도쿄 중심가 긴자에는 광고판이 설치됐다. 신문에도 광고가 나갔다. 애초 술집 등 유흥가 여성들을 끌어모을 작정이었으나 실적이 저조하자 이처럼 일반 여성들을 대상으로 아예 공모를 하고 나선 것이다. 몰려든 여염집 처녀나 주부들 중 많은 수는 자세한 내용을 알고 발길을 돌렸지만 상당수는 알고도 협회에 등록했고 일부는 강요당했다. 그들의 직업은 성매매. 일종의 공창이었다. 패전 직후 일본은 너무 가난했다. 상대는 군표와 달러를 갖고 있던 점령군(미군).

표를 산 수백 명의 해군복 차림 미군들이 요코스카에 있는 야스우라 하우스 안의 ‘위안소’ 앞에 길게 줄을 선 모습을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그리하여 ‘팡팡갸루’ ‘요팡’들이 한때 일본 경제를 지탱했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던 일본인들은 그 치욕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일제가 만든 ‘위안소’와는 달리 중개업자를 통하지 않고 “성의 방파제(성병 방지)” 등의 구호를 내걸고 공개모집했다는데, 그러나 일제와 미군의 ‘위안소’가 진짜 다른 점은 그게 아니라는 건 세상이 다 안다.

‘위안소’는 성병의 만연과 미국 내 여론의 반발로 1946년 폐지됐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도쿄의 밤은 다시 미군들 ‘위안업소’들로 흥청댔다. 공포와 스트레스에 찌든 젊은 병사들의 불만을 달래고 원기를 회복시켜 다시 전장에 투입하는 ‘R&R(Rest and Relaxation/Recuperate, 휴식·오락·회복)’를 실시했고 도쿄는 한국 전장에서 살아남은 미군 병사들이 1주일 동안 ‘몸을 푸는’ R&R기지였다. 물론 한국에도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이 본격화하면서 R&R 중심기지는 미군 발진기지인 타이 방콕에 정착했다. 방콕-마닐라-오키나와-도쿄-서울.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이 난공불락의 광대한 성매매 황금벨트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고 그것은 곧 미군의 동아시아 진출 역사였다.

미군의 베트남전 철수와 함께 R&R 기지, 특히 국내외 정책도 발맞춰준 덕에 R&R의 천국으로 거듭난 방콕의 그 막강한 성매매 인프라를 차지한 것은 유럽 민간인들이었고 그 다음이 일본인 행렬이었으며, 또 그 다음, 지금은 한국·중국의 졸부들이 휩쓸고 있다. 유재현의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그린비)는 그 비참한 역사를 반추한다. 피해자들이 돈 좀 벌었다고 이번엔 차례로 약자들한테 몰려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현실은 더 비참하다. 일본 우익들이, 미군도 그랬고 심지어 한국군(이런 것마저 닮는 ‘용병’이라니, 가련하도다!)도 그런 짓을 했는데 왜 자신들만 욕하느냐고 항변한 게 기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런다고 자신들이 당한 치욕만 기억하는 적반하장의 그들 죗값이 가벼워지진 않겠지만.


군대조직, 특히 정복자의 군대조직이 존재하는 한 ‘위안부’ 비극의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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