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일본(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전혀 새로울 게 없다. 냉전시기의 북한이나 중국, 소련(러시아) 자리에 일본을 살짝 바꿔 앉혔을 뿐이다. 냉전은 무너졌고 러시아는 예전의 소련이 아니며, 북한은 주한미군조차 직접적인 남침 억제 역할을 그만두고 ‘전략적 유연성’을 앞세워 더 광범위하고 큰 적을 상정해서 주둔 유지 명분을 만들어내야 할 만큼 힘을 상실했다.
냉전 붕괴 뒤 한-미 동맹 강화론자들이 새롭게 주목한 것 중의 하나가 일본위협론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떠나면 재무장한 일본을 견제할 힘이 우리에게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중국에 기댈 것인가? 잘살고 힘있는데다 영토적 야심도 없어 보이는 태평양 건너 미국밖에 기댈 곳이 더 있나? 대충 그런 논리인데, 최근 올림픽 성화봉송 과정에서 불거진 중국 유학생들의 과도한 애국주의 행태를 본 사람들은 더욱 그런 쪽으로 생각이 돌아갈지 모르겠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빠져나가면 힘센 나라들 패권·군비경쟁 격화와 ‘경찰력’ 부재로 동아시아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이른바 ‘동아시아 힘의 공백’론이 그런 우려 때문에 힘을 받고 있다.
일본? 물론 위험한 나라다. 우리에겐 특히. 그런데 일본의 재무장과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바로 미국이다. 일본 자위대 강화와 해외파병을 다그치고, 그것을 위해 군대 보유와 집단적 자위권(전쟁수단) 포기를 규정한 일본헌법 제9조를 없애든지 바꾸라고 줄기차게 압력을 넣고, 전 세계에 개입하는 미국의 군사비를 분담하고 미사일방어(MD)에도 가담하라고 일본을 부추기고, 여전히 대규모 자국군 기지를 일본에 깔아 놓고 있는 나라가 미국 아닌가.
일본이 위험하니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미국에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횡재수다. 일본 재무장을 압박하면 할수록 한국에선 한-미 동맹 강화론이 위세를 떨칠 테니 말이다. 꿩 먹고 알 먹고다. 미국이 동아시아 나라들과 맺고 있는 ‘양자관계’가 바로 이이제이·각개격파 전술의 전형이다. 미국은 미-일, 미-한, 미-중, 미-타이 식으로 동아시아 각국과 개별적으로 안보관계를 맺지 동아시아 나라들 집단과 맺지 않는다. 동아시아 나라들은 자전거 바퀴살처럼 중앙에 있는 미국과만 개별관계를 맺고 각자 미국만 바라보면서 자기들끼리 경쟁하고 갈등한다.
한-미 동맹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쇠고기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걸핏하면 ‘반미, 친북, 좌파’를 읊조리며 정치적 반대자들을 비난하던 세력의 집권 뒤 행태를 보라. 간도 쓸개도 다 빼주는 게 동맹강화라면, 그것은 식민지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감수해야 할까?
미-일 동맹 하위체제인 한-미 동맹의 최대 수혜자는 일본이다. 그 구도하의 최전선인 우리가 분단 속에서 동족과 싸우며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일본은 그 덕에 번영을 구가했다. 미-일 동맹 강화는 옛소련 대신 거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이에 편승해 중국과 대적하려는 일본의 패권전략 소산이다. 한-미 동맹 강화가 거기에 봉사하는 거라면 재고해야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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