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일본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지금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무역총액에서 점하는 대미국 셰어(미국과의 교역비중), 대중국 셰어 추이를 보자. 1988년에는 대미 셰어가 29.1%, 대중 셰어는 4.3%였다. 그런데 2007년에는 대미 셰어가 16.1%로 떨어지고 대중 셰어는 17.7%로 급등했다. 이제 일본 최대의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다. 여기에다 한국이나 대만,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나라들과의 교역을 포함하면 일찍이 일본이 침략한 나라들과의 무역액 비율은 40%가 넘는다. 만일 자위대가 해외에서 무력행사를 할 수 있도록 헌법 9조를 개정한다면, 이들 나라와 원활한 무역·경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매우 불안하다. 만약 경제제재라도 당한다면 일본은 아마 나라를 꾸려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일본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국가예산을 담당하는 주계국 주계관 등을 거친 고위관료 출신으로 지금 간사이가쿠인대학 교수이자 뉴스캐스터이기도 한 무라오 노부타카(52)라는 사람이 했다는 얘기다. <아사히신문>이 5일 전했다.
무라오는 계속한다. 일본은 유례없는 고령화에 정부 재정적자도 세계 최악이다, 따라서 미국하고만 해보려 하지 말고 아시아 나라들과도 좋은 관계를 쌓아올리지 않는 한 일본의 미래는 없다. 9조를 없애면 미국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 되면 일본은 독립을 지킬 수 없고 미국의 세계전략에 말려들어간다. 대미 일변도가 아니라 명실공히 등거리 외교로 가야 일본이 산다. 2005년도 자료를 보면 일본 방위예산(군사비)은 독일보다 많아 열강급이다. 9조가 있는데도 그렇다.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놔도 많은 부분 얘기가 되지 않을까. 다만 군사비는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 지미 카터 정권 때 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자신의 책 <선택-세계의 지배자냐 리더냐>(2004)에서 중국의 견해를 빌려와 일본이 세계 2위의 군사비를 쓰고 있고, 미국에 필적하는 미사일 기술을 갖고 있으며, 1주일 안에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1천 개 이상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일본은 핵연료 처리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라오는 일본의 대아시아 무역비중이 40%를 넘기 때문에 자위대를 키워서도, 해외에 파병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자위대를 키워야 하고, 해외파병도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 헌법 9조를 없애든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일본 우익이다. 브레진스키는 중국 견제를 비롯한 미국의 유라시아 전략을 위해 일본 우익 편을 들어주고 있다.
무라오가 맞을지 일본 우익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무라오가 가서는 안 된다고 한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건 확실하다. 경제·군사 대국 일본에도 ‘미래가 없다’고 한 길이 분단국가에는 더욱 치명적일 것은 자명하다. 한국 영토를 신라통일 이전으로 되돌려 놓은 분단이 영구화할지 모른다. 미국은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고도 1905년에 조선을 일본에 넘겼다. 일본이 패망하자 대신 소련과 한반도를 나눠 점령한 미군의 주둔은 일제 식민지배 기간의 두 배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계속되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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