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교과서에 담긴 단양 사인암 사진을 보고 언젠가는 가 보리라 다짐했다.
맑은 개울 휘돌아가는 소나무 우거진 언덕배기에 우뚝 선 병풍 같은 단애. 강산이 여러 번 바뀌고 난 몇 년 전에야 그곳엘 갔다가 금방 돌아서고 말았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사인암은 사진에서 본 대로였으나 사인암이 내려다보고 있는 바로 앞 개울 건너 땅엔 포장도로가 달리고 민가와 업소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사인암의 기품과 그 기품을 받쳐줄, 오랜 세월을 떠올리게 할 풍경은 없었다. 사인암을 그냥 보기 드문 바위 덩어리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준 것은 그 범상치 않은 바위를 돋보이게 해준 주변 숲과 하늘, 바람, 물, 자갈, 바위, 풀밭이었거늘. 상업주의와 얽힌 인간의 독점욕은 사인암을 한낱 인공 정원석처럼 만들어 놓고 있었다. 돈이 횡행하는 지금 세상에, 그저 기암괴석 정도라면 그보다 더한 것도 쌓아올릴 수 있을 것이다. 사인암이 사인암인 것은 그런 인공이 범접할 수 없는 오랜 세월과 자연과 역사가 빚어낸 작품이기 때문이 아닌가.
도담 삼봉에서도 내 기대는 배반당했다. 세월과 역사가 거무스름하게 들어앉은 강물 속의 그 아담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바위섬들과 정자는 을씨년스런 인근 시멘트 공장 기억과 함께 어느 유원지의 값비싼 인공 조경 장치처럼 다가왔다. 그것을 코앞에 바라다보는 강물 이쪽 둔덕은 깨끗하게 깎여 주차장과 음식점과 가게들이 들어앉아 갖가지 소음을 빚어내고 있었다. 도담 삼봉을 가까이 가서 보려는 인간들의 욕망을 겨냥한 화폐자본은 정작 도담 삼봉의 생명인 자연과 세월과 역사,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신비를 그곳에서 깨끗하게 밀어내버렸다. 도담 삼봉은 어느새 주변으로 밀려나 그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었다.
어디 단양 8경만 그러하랴. 제주도 섭지코지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 빼어난 풍광 때문에 사람을 불러모았던 전국의 절경들이, 그것을 독점하거나 이용해서 화폐소득을 올리려는 인간들의 욕망 때문에 급속히 망가지고 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독점하는 순간 그곳은 이용하고 독점할 가치가 사라져버리는 역설을 그들은 모를까.
미래 관광의 추세는, 너무나 흘러넘치는 인공에 지친 사람들이 세상 너머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을 보고자 하는 본능을 최대한 충족시켜 주는 환경을 제공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잘사는 나라들에선 오래전부터 예측해 왔다. 자연 그대로, 또는 인공의 최소화가 최대의 관광자원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인암을 한낱 바위로, 도담 삼봉을 정원석으로, 섭지코지를 인공세트장으로 만들어놓는 주변 인공물들을 철거하라. 그게 그 자연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길이다.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이미지가 오히려 호감을 샀던 왕년의 인기가수 이은하도 ‘한반도 대운하’를 예찬하고 나섰단다. 대운하는 경제성도 의심스럽지만 자연 보존과 관광 차원에선 대재앙이다. 불가피한 토목공사와 거대 인공 구조물들은 한반도 중앙 천혜의 절경들을 뿌리부터 거세해버릴 것이다. 이은하가 안타깝다.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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