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지난주 서울에 온 일본 <아사히신문> 베테랑 기자는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 때 적극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격차사회 현상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해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반성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격차사회’란 ‘양극화 사회’의 일본식 표현이다. 한국의 주요 매체들은 장기불황에 빠졌던 일본이 고이즈미의 개혁정책(신자유주의 정책) 덕에 최근 불황 터널에서 벗어나 성장세를 회복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듯 보도하면서 일본을 본받으라고 목청을 높였지만, 중앙·지방을 두루 거치고 지금 지방총국 데스크를 맡고 있는 그 <아사히> 기자의 얘기는 전혀 달랐다.
일본 경제의 불황 탈출이란 것도 대기업과 수출업체 중심의 호황에 힘입은 것으로, 중소기업이나 서민층의 체감은 호황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들은 유례없는 이익을 올렸지만 민영화·시장화 진군나팔 속에 없는 사람들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다.
<한겨레>와 지난 10여년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40대 중반의 그 기자는 얘기 끝에 “고이즈미 정권이 끝난 지 몇 년이나 됐는데, 한국의 새 정권은 왜 하필 그 뒤를 따라가려 하느냐?”고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 만료로 2006년 9월 물러났고, 뒤를 이은 그의 후계자 아베 신조도 불과 집권 1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2007년 9월 물러나고 말았다. 아베를 퇴진으로 몰아간 것은 그 두 달 전의 참의원 선거 참패였다. 그때 자민당이 대패한 것은 바로 고이즈미가 도입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롯된 양극화와 농촌 및 도시 서민 생활 불안, 그 약한 고리를 집중 공격한 제1야당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참의원 선거 대패 뒤 등장한 후쿠다 야스오 현 자민당 정권 역시 고이즈미 정책 틀을 벗어나지 못한 탓인지 지지율이 형편없다. 오자와 이치로의 민주당 정권 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도 그런 사정에서 연유한다. 이런 이웃나라 사정을 뻔히 보면서도 왜 한국이 뒤늦게 따라가려 애쓰느냐고 <아사히> 기자는 물었다. 그 기자는 “그나마 고이즈미는 두 차례나 북한을 방문하는 등 비록 안팎의 견제로 좌절하긴 했지만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은 왜 잘나가던 남북관계마저 망치려 하느냐는 얘기다.
좀 다른 얘기지만 덧붙여 둘 게 있다. 지난 5월30일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이 이임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과 한국민들은 주기적으로 침략과 강압적인 점령을 경험했지만, 지난 55년간 전례없는 평화와 안정, 번영을 누려왔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헌신이 이런 풍족한 환경의 주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13세기 고려를 점령한 몽골의 내정간섭 기관장 다루가치 치하에서도, 나중에 기황후 힘을 빌린 기철 일파처럼 몽골에 빌붙은 특권층들은 ‘전례없는 평화와 안정, 번영’을 누렸다. 고려 백성이야 죽든 말든. 일제 36년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지난 55년간 우리 민족은 국토가 양단되고 전쟁으로 350만명이 죽었으며, 1천만이 이산했다. 버웰 벨이 말한 번영이라는 것도 아직껏 계속되고 있는 그 분단 비극 위에 핀 반쪽 꽃이라는 걸 그는 몰랐을까. 자신의 조국이 한반도 분단 당사자였다는 것도.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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