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 ‘북한 인권’ 제물로 바친 ‘한풀이’

등록 2006-04-05 23:20

“매진·젊은층도 인기”라던
보수진영의 ‘극찬’ 비해 ‘부흥회’ 연상 무대 실망
지난 3월30일,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요덕스토리>를 보러 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총재가 다녀간 3월26일 이래 전회 매진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던 때다. 3월15일 막을 올린 이 뮤지컬에 대해 <조선일보>는 막이 오르기 전인 2월에 5차례, 막을 올린 후 13차례 기사화하여 보수층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하나의 뮤지컬에 대해 한 신문이 거의 매일 기사와 칼럼을 통해 현장 소식을 전한 것은 아마 우리 연극 사상 유례 없는 일일 것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이렇게 거의 매일 찾아와 관람하며 논평을 한 연극도 없었다. 이 연극이 말하고자 했다는 북한 인권 문제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토록 정치적으로 유통되는 것일까.

1만원짜리 팜플렛을 사들고 올라간 2층 객석에는 밖에 붙은 ‘현장 매진’ 안내문과는 달리 빈 자리가 꽤 있었다. <조선일보>에서 강조하던 “젊은 관객들”보다는 역시 50대 이후 관객들이 주도적이었다. 무대 양 옆에 영어자막을 넣은 것을 제외하면 무대는 상당히 부실한 컨셉과 감상주의적인 이야기 구조로 실망감을 안겨주었는데, 공연은 마지막 폭발과 함께 모두가 죽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중간 휴식 포함하여 2시간 45분 가량 진행되었다.

<요덕스토리>는 북한에 실재하는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배경으로 북한의 현실을 고발하는 뮤지컬이다. 공훈배우 칭호를 받은 무용수 강련화(최윤정 분)가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오명으로 가족과 함께 요덕수용소로 끌려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용소장 리명수(임재청 분)의 강간으로 임신을 한 강련화는 자살을 기도하지만 실패하고 아이를 낳는다. 리명수를 용서하는 강련화와 그에 감화받은 리명수의 사랑, 강련화를 탈출시키려는 시도와 방해공작으로 인한 이들의 죽음이 주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수용소 죄수들의 전사가 하나씩 고백된다.

고난의 역사 고발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애니깽>이나 <송환>처럼, <실미도>처럼. 그런데 북한 수용소의 현실을 노래하는 이 연극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기독교의 분위기와 결합되어 있다. 처형대의 십자가 이미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류의 노래들, 주기도문을 변형한 노랫말, 무엇보다 순교자의 이미지로 채색된 죽음의 행렬!

인물들은 이렇게 노래한다. “아버지 남조선에만 가지 마시고 공화국 이곳 요덕에도 와주소서”. 이 노래는 듣는 관객에게 우월감과 동정심을 자극하지만, 남조선에만 오고 북조선에는 가지 않는 신이란 누구란 말인가? 그건 바로 자본의 신이다. 이 노래를 듣고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 이들은 자본의 신에게 축복을 받아온, 그리고 여전히 축복받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탈북자로서 북한에 대해 피맺힌 한을 가진 연출가와 그의 한풀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한풀이가 민주화 과정에서 소외를 느끼는 기득권 층의 한풀이와 결합하는 것은 옳은 길은 아니다. 공연장은 부흥회를 연상시킨다. 마치 북한 사람들의 시련을 제물로 하여 우리의 현재를 축복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를 맹목적 군중으로 만드는 것이 연극의 본연은 아니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