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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세계가 주목한 ‘벗어던진 고정관념’

등록 2006-05-03 21:26수정 2006-05-04 10:21

지난달 유럽 7개 도시 순회공연을 마친 안은미는 현지 평단으로부터 ‘아시아의 피나 바우슈’라는 격찬을 들었다. 사진은 유럽에서 공연한 〈신 춘향〉의 한 장면
지난달 유럽 7개 도시 순회공연을 마친 안은미는 현지 평단으로부터 ‘아시아의 피나 바우슈’라는 격찬을 들었다. 사진은 유럽에서 공연한 〈신 춘향〉의 한 장면
[100도강추] 유럽서 격찬한 안은미의 ‘신 춘향’
현대무용의 최첨단
‘동양의 피나 바우슈’ 찬사 서양인들이 그에게 푹 빠졌다

“안무가 안은미는 동양의 피나 바우슈라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유럽의 무용전문지 〈댄스 유럽〉이 지난 4월11~12일 런던 피콕 극장 무대에 오른 〈신 춘향〉을 보고 이렇게 평했다. 피나 바우슈가 누구인가. 도저한 절망과 폭력을 독일 표현주의 미학으로 소화한 탄츠 테아터의 시조로서, 세계 현대무용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장이 아닌가. 격찬 중에서도 최고의 격찬이 아닐 수 없다. 피나 바우슈와 안은미는 막역한 사이다. 피나 바우슈는 “은미, 여기는 몹시 지루해. 와서 뒤집어 줘”라며 안은미를 독일에 초청했고, 지난해 가을까지 1년 동안 안은미는 피나의 본거지인 독일 부퍼탈 등에서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이번 유럽 투어는 그 결과물이다.

바로 그 〈신 춘향〉을 국내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오는 12~14일, 이 작품의 공동제작자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전화 1544-5955)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보면서 우리가 가질 법한 의문. ‘왜 서양인들은 안은미에 열광하는가. 안은미는 세계 예술계에서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우리는 안은미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 질문에 답하려면 상당한 지적 노동이 필요하다. 실제로 유럽에서 현대무용은 진보적 지식인들의 잔치판이다. 무용가들의 안무는 담론과 논쟁의 원천이 된다. 국경은 의미가 없다. 해설 없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무용은 그 자체로 만국공통어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안은미(44·현대무용가)는 작품 외적인 것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빡빡머리’, ‘토플리스’(상반신 누드)로 대표되는 도발성, 그리고 엽기 코드가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유럽 7개 도시 순회공연에서의 ‘기립 박수’가 말해주듯, 그의 안무는 ‘현대무용의 메카’ 유럽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을 찬찬히 살펴볼 때다.

〈댄스 유럽〉은 “안은미의 극적인 색채 사용, 놀라 입이 벌어질 정도로 수많은 창의적인 포즈와 동작을 만드는 인체의 극적인 활용은 숨이 막힐 정도”라고 표현했다. 색채와 몸짓을 포함한 다섯가지 열쇳말로 〈신 춘향〉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본다.


“빡빡머리·토플리스는 도발적” 평가는 국내무용계 시각일뿐
원색·알몸 극적 표현 창의적 춤판 동서고금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색채

〈신 춘향〉의 무대는 온통 붉은색이다. 마치 당집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오색찬란한 키치 미학이기도 한데, 한때 홍대 앞에서 ‘놀았던’ 전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안은미는 원색적이다. 어정쩡한 색깔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보자기. 원색의 보자기는 만능이다. 허공에 던져 ‘날리고’, 사람을 태워 ‘이끌고’, 몸에 ‘두른다’.

몸짓

전속력으로 뛰어다니던 무용수들은 어느덧 천천히 기어다닌다. 무대 양옆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몸은 유기체(혹은 살아있음)에 대한 섬뜩한 각성이다. 안은미의 몸짓은 매번 진화한다. 〈렛 미 체인지 유어 네임〉에서 달팽이를 만들어 낸 인간의 몸은 〈렛 미 텔 유 섬싱〉에서 반인반수 켄타우로스가 되더니, 〈신 춘향〉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상상의 동물로 변해 있다. 그것은 철학적이며 서늘한 아름다움이다.

알몸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가 밝아지면 한 무리의 알몸들이 바닥에 누워 있다. 그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안은미의 알몸은 성적 환상을 제거한 것이다. 알몸은 야한 것, 은밀한 것, 상업적인 것이라는 사회의 편견에 저항한다. ‘왜 벗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왜 입어야 하나’라는 반문을 받는다.

도발

안은미의 작품은 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다가간다. 아니 무용을 모르는 사람에게 더욱 강한 호소력을 가진다. ‘무용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은 안은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되레 걸림돌이 된다. 안은미의 작품이 도발적이라는 평가는 기성 무용계의 시각이다.

음악

어어부밴드의 장영규가 빚어내는 음악은 단순하면서도 중독적이다. 오래전부터 안은미와 함께 해온 그의 음악은 〈신 춘향〉에서도 핵심을 이룬다. 안은미는 이 현란한 음악을 ‘무당 작두 타듯’ 타고 넘는다. 고지연의 가야금, 강은일의 해금 등 국악 반주와 판소리를 테크노 리듬으로 용해시키는 장영규의 솜씨는 가히 천재적이다.

〈신 춘향〉은 판소리 〈춘향전〉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한국의 전통에 안주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녹여버리는 용광로 같다.

안은미의 공연을 한국에서 보는 것은 비행기 삯을 내지 않고 세계 현대무용의 첨단을 만나는 것이다. 다시 〈댄스 유럽〉의 리뷰로 돌아가 보자. “볼 기회가 어떻게라도 생긴다면 절대 놓치지 마시라.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이 윤택해질 것이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안은미무용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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