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여자’가 문 연 ‘생각의 공간’
지금은 육순이 넘은 세계적 연출가 피터 브룩의 유명한 책 〈빈 공간〉은 이런 말로 시작한다. “어떤 빈 공간이든 무대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이 빈 공간을 가로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주시하고 있다면 이미 연극적 행위는 시작된 것이다”. 화려한 무대 이전에, 아름다운 대사 이전에 연극이 존재했다는, 연극은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가장 오랜 언어에 속한다는 이 말은 연극에 관한 고전적 정의가 되었다.
브룩이 ‘빈 공간’에서 암시했던 것이 단지 무대 공간일 뿐일까? 아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다. 바로 생각의 공간이다. 관객으로 극장에 가서 만나는 가장 행복한 공연은 우리에게 생각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살며시 열어주는 연극들이다. 그 공간은 배우들이 선 무대 뒤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며 거기에선 관객이 춤춘다. 질문하고 느낀다.
불행하게도 요즘 우리 연극에선 무대와 객석 간의 조화로운 관계에 관한 이 오래된 믿음을 재확인하는 경험을 하기 어렵다. 무대가 아무리 화려하고 눈을 현혹해도 그것이 우리의 생각의 문을 닫아놓을 때 공연은 공허해진다. 연극도 언어인 만큼 연극의 뒤에 서 있는 작가, 연출가들의 독창적 사유가 표현되어야 하는데 요즘 연극에는 그게 없다. 연출가들은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까 고심하지만 실상 장면 하나로 그 연극을 이해할 만큼 깊이 있는 장면을 만나기도 어렵다.
작은 규모의 연극을 통해서지만 자기 생각을 자유로이 들려주는 연출가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여섯 가지 결혼 이야기’를 주제로 열린 제2회 여성연출가전의 한 작품, 〈그녀를 축복하다〉의 작가 겸 연출가 최진아다. 객석 50석의 아주 작은 극장에서 단 50분 동안 공연한 이 작품에서 그는 단도직입으로 질문한다. 기혼 여성의 로맨스는 죄인가?
극이 시작되면 거의 속치마 차림의 한 여자가 무대 위를 양쪽으로 뛰어다닌다.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에서처럼 벽에 몸을 부딪히며 자신을 못 견뎌하던 그는 난간으로 뛰어올라 외친다. 그리고 노래한다. “나는 봄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나는 현수를 좋아합니다. 봄비가 내리는 날 현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이는 삼십 대 주부 선여(정미설). 학원의 젊은 춤선생 현수(이준영)와 바람이 났다. 남편(장우재)과 함께 한 과거와 아이들이 자라나는 미래를 생각하며 가정으로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게 쉽지 않다.
흔하디 흔한 이야기라고? 그러나 이 연극은 ‘불륜의 사랑’ 이야기로 쓰여지지 않았다. 연극은 제도적 삶의 안온함에 반기를 드는 자유로운 본능의 산들바람을 노래한다. 그리고 설렘을 잃어버린 일상의 공허함을 일깨운다. 감정과 생각의 생성 과정을 정확히 포착하는 예측 불가능한 대사들, 관객을 향한 고백 형식의 자기 분석들이, 상투적일 수 있는 이 연극을 유쾌하고 솔직한 한바탕 정신의 모험으로 바꾼다.
연극에는 이렇다 할 무대 장치도 돈 들인 의상도 없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배우들처럼 무대 위 배우들도 미숙함을 드러낸다. 그런데 웬일인가. 피아노 음악이 봄비처럼 가슴을 두들기는 가운데 집과 길, 소파와 자전거의 대비가 명료히 드러나고 배우들의 어설픔마저 연극의 유쾌함 속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여기서 춤은 바람이 아니라 자유다.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노이정/연극평론가 voiv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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