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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카루소-축음기’ 문화대량생산 길 트다

등록 2006-01-18 17:29수정 2006-01-19 13:49

노승림의무대X파일 - 테너 엔리코 카루소
음반과 무대에서 수많은 기록을 남긴 테너 엔리코 카루소와 관련된 일화를 풀어내자면, 사실 한 편의 칼럼으로 부족하다. 일단 음반과 관련해서는 지난번 그라모폰 레코드사와 최초의 클래식 음반 프로듀서 가이스버그를 다루면서 잠깐 언급한 바 있다. 1백 파운드를 지불하고 아무런 방음장치 없는 호텔 객실 안에서 단 한 번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열 곡 짜리 디스크는 레코딩 산업과 역사의 분기점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카루소 녹음 이전 불과 5천 파운드의 자본으로 설립된 그라모폰사는 이 음반으로 무려 1만5천 파운드의 수익을 냈다.

그로부터 2년 뒤 카루소와 전속 계약을 맺은 빅터사는 230여개의 카루소 음반을 녹음하여 세계 클래식 음반 시장을 석권하였고 카루소는 음반 로열티로만 무려 1백만 달러가 넘게 벌어들이면서 명실공히 ‘레코딩계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또한 음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레코딩에 거부반응을 보였던 당대 유명 성악가들이 카루소의 성공을 바탕으로 음반 녹음 대열에 하나 둘 줄을 서기 시작했고, 축음기 보급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01년 약 7천5백여대에 불과하던 축음기가 불과 5년 뒤에는 그 10배가 넘는 8만6천대나 전세계에 보급되었다는 빅터사의 통계는 “축음기가 카루소를 만들었나, 아니면 카루소가 축음기를 만들었나?”라는 명언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문화 대량생산’의 시초이자 성공적인 표본으로 각인된 엔리코 카루소는 실제 무대활동도 ‘대량생산’된 레코딩에 필적할 만큼 활발했다. 지지부진한 무명가수로 20대를 보내고 있던 엔리코 카루소는 1894년 나폴리 누오보 극장에서 지휘자 빈센초 롬바르디에게 전격 발탁돼 1897년 스승의 지휘로 팔레르모 극장에서 오페라 <라 조콘다>로 장미빛 인생을 시작했다.

이 신화적인 성공무대 이후 그에게는 오페라 출연요청이 물밀듯이 이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로마, 독일 등지로 이어진 그의 커리어는 마침내 1900년 20세기 시작과 더불어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안착했고 1902년 런던 코벤트 가든을 거쳐 마침내 대서양 건너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상륙했다. 1902년 가을시즌부터 시작된 엔리코 카루소와 메트로폴리탄의 계약은 무려 1920년까지 연장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장장 607회에 달하는 무대공연을 기록하며 ‘카루소 신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연주일정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독이 되었다. 그를 무대에 세우기 위한 개런티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메트로폴리탄은 전속계약금에 상응하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 카루소를 무리하게 혹사를 시켰다.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무리한 연주일정, 천성적인 완벽주의자 기질, 마지막으로 성악가에게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애연습관은 결국 카루소를 성악가들의 평균연령보다 좀 더 일찍 쓰러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1920년 12월24일 늑막염이 악화된 카루소는 메트로폴리탄 무대를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오페라 공연에서 은퇴하였다. 1921년 완치불능을 판정받고 고향 나폴리로 돌아온 그는 1921년 8월 2일 마흔여덟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노승림/공연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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