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접견권·반대심문권 등 무시 원칙 훼손
“학살증거는 뚜렷”…“미국 단죄 자격 없다” 주장도
“학살증거는 뚜렷”…“미국 단죄 자격 없다” 주장도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이라크 특별법정의 사형 선고를 두고 국제사회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압제를 법치로 대체한 이정표”라고 칭송하고 나섰지만, ‘세기의 재판’에 걸맞지 않은 절차적 문제점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지적이 일면서 ‘역풍’도 만만치 않다.
〈뉴욕타임스〉는 6일 이번 재판의 법률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조지타운대의 조나단 드리머 교수는 ‘재판절차가 국제적 정의 기준에 부합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선 이번 재판은 변호인 접견권 등 근대적 재판이 보장하는 형식들이 무시됐다. 후세인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 체포된 뒤 1년간 변호사를 접견하지 못한 채 신문만 당했다. 안전 문제 때문에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바그다드 ‘그린 존’에서 재판이 열려 공개재판 원칙이 훼손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검찰은 증인이나 증거목록을 변호인쪽에 사전에 주지 않아 반대심문권이 무시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익명의 증인들을 내세운 점도 정상적 사법절차에 맞지 않다며, 재판부와 변호인들이 국제형사법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재판관 선임과 재판 진행을 두고도 문제제기가 이어진다. 지난해 12월 5명으로 구성된 재판부의 한 판사는 그의 형제가 후세인 정권 때 처형된 시아파인 것으로 드러나자 사임했다. 지난 1월에는 주심판사인 리자르 무하마드 아민이 정치권의 간섭을 비판하면서 물러났다. 지난해 10월 첫 재판 다음날에 한 변호인이 납치·살해된 것을 시작으로 3명의 변호사가 죽임을 당한 것도 공정한 재판이 불가능하다는 우려를 키웠다.
후세인 전 대통령을 특별법정에 넘긴 미국은 이번 재판에 표면적으로 간섭하지는 않았지만,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에 지원사무소를 설치해 재판부에 법률적 지원을 하면서 보안문제를 맡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전 대통령이 두자일마을 학살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뚜렷하다며, 재판 결과의 정당성만큼은 인정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6일 칼럼에서 “정의와 위선은 하나인가”라며 근본적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에서 이라크를 후원하면서 싼값에 화학무기 원료와 제조법을 넘겨 10만명이 넘는 쿠르드족이 독살당하는 데 일조한 미국과 영국이 후세인 전 대통령 단죄를 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칼럼은 많게는 60만명이 넘게 숨진 이라크전의 책임을 생각하면 이번 판결이 “또한 미국에 대한 유죄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사형제에 반대하는 상당수 유럽 정부들은 후세인 전 대통령의 사형을 반대하고 나섰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아일랜드·네덜란드·스웨덴이 공식적으로 이런 뜻을 밝혔다.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는 “그의 범죄가 얼마나 잔인하든, 이것(사형 선고)은 우리의 정치적 전통이나 윤리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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