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해온 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대령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23일 밤 영국에서 숨지면서, 서방에서 러시아의 음습한 이미지가 되살아나고 있다.
사망 원인은 희귀 방사성 물질 ‘폴로늄 210’ 중독. 영국 정부는 이 죽음에 연방보안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부 국가비상대책위원회인 ‘코브라’까지 소집했다.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도 불러 사건 규명에 협조할 것을 촉구했다.
라듐보다 5000배 이상 강력한 알파 방사능을 내뿜는 폴로늄 210은 핵원자로 등에서만 나오고, 추출에 상당한 핵기술이 필요한 탓이다. 더구나 이 물질은 먹거나 신체에 주입하지 않는 한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의혹의 한가운데 연방보안국이 있다. 이 기구는 옛 소련의 악명 높은 국가보안위원회(KGB)가 해체된 뒤, 1995년 국내 분야를 넘겨받았다. 리트비넨코는 이 조직이 99년 3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모스크바 아파트 폭파 사건의 배후이며, 러시아 부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암살을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신문과 방송을 뒤덮은 리트비넨코의 죽어가는 모습은 이전의 러시아에 대한 나쁜 인상을 되살려놨다. 그러잖아도 유럽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왔다. 이에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이번 사건이 푸틴 대통령의 서방 방문을 가려버렸다”고 평가했다. <프라우다>는 “(이 사건이) 러시아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의혹을 부른 것은 푸틴 대통령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전직 국가보안위 출신 대령이자 연방보안국 책임자였다. 2000년 연방보안국 예산을 대폭 증액시킨 것도 그였다. 그는 연방보안국 본부가 있는 루비안카에서 2000년 “지령 1, 권력 완전장악 완수”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 역시 국가보안위 출신이다.
지난주에는 전직 국가보안위 간부가 거대 천연가스 회사 가스프롬의 부회장에 임명됐다. 2004년 우크라이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후보가 다이옥신에 중독됐을 때도, 친서방 성향 유셴코의 당선을 막으려던 푸틴 대통령이 배후로 지목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4일 “리트비넨코 죽음에 푸틴 대통령이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끝까지 따라다닐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푸틴 대통령과 연방보안국은 이런 의혹의 눈길을 강하게 뿌리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불행하게도 그의 죽음이 정치 도발을 위해 이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유럽연합(EU)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와 그 지도자의 명예를 더럽히려는 잘 짜인 계획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에이피>(AP) 통신 등도 러시아 정보기관이 의심받기 쉬운 폴로늄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전했다. 런던경찰청은 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배후라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자살설 및 베레조프스키 배후설 △러시아 정보요원 독자 작전설 △체첸 무장세력과 친분에 따른 제거설이 나돌고 있다. 미스터리는 악몽이 되어 푸틴 대통령을 좀체 떠나지 않을 태세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에이피>(AP) 통신 등도 러시아 정보기관이 의심받기 쉬운 폴로늄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전했다. 런던경찰청은 아직 러시아 연방보안국이 배후라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푸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자살설 및 베레조프스키 배후설 △러시아 정보요원 독자 작전설 △체첸 무장세력과 친분에 따른 제거설이 나돌고 있다. 미스터리는 악몽이 되어 푸틴 대통령을 좀체 떠나지 않을 태세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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