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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리 사퇴결심 어떻게
당·정·청 회동…재야파 태도선회 영향
당·정·청 회동…재야파 태도선회 영향
이해찬 국무총리가 사퇴를 결심하게 된 데는 지난 10일 밤 열린 ‘당·정·청 수뇌부’ 회동이 결정적 ‘고비’가 됐다.
이 자리에는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이 총리,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불참했다. 여기서 김 원내대표는 사실상 ‘당론’ 형태로 이 총리에게 사퇴 불가피론을 전달했다. 10일 ‘내기골프’ 의혹이 불거진 직후 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을 수렴한 결과, 70% 이상이 “이 총리 스스로 거취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힌 대목을 전한 것이다.
이 총리가 그 자리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선 참석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가 받은 ‘타격’을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이날은 이 총리가 3·1절 골프 파문 이후 처음으로 한국노총 방문 등의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주춤한 모습을 보인 날이었다.
열린우리당의 기류를 전해들은 이 총리는 주말인 11~12일 몇몇 여당 의원들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당의 ‘바닥 민심’을 직접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적인 응답은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총리에게 우호적이었던 김근태 최고위원 등 당내 재야파의 태도 선회가 이 총리의 결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재야파 의원들은 골프 파문이 불거진 직후만 해도 “총리직에서 물러날 정도의 중대 사안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이 총리의 ‘거취’ 문제 언급을 사퇴 의사 표시로 기정사실화하던 당 주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 쪽은 지난 9일 서울 노량진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정동영 의장 주재 최고위원 만찬 이후 전과는 달라진 기류를 나타냈다. 이날 만찬에서 최고위원들은 ‘바닥 민심’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당시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은 당사자들의 잇따른 ‘말바꾸기’ 논란과 한국교직원공제회의 영남제분 주식투자 의혹 등으로 일파만파로 번지던 상황이었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을 전후로 이 총리와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했고, 재야파 의원들에게 “이 총리는 마음을 비웠으며 총리직을 계속할 뜻이 없다”고 전했다. 재야파는 지난 12일 밤 모임을 열어 “상황이 바뀌었으며,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극도로 말을 아끼던 정 의장 등 지도부는 각 계파의 태도가 어느 정도 통일되기 시작한 이후 발빠르게 사퇴 불가피론을 전개했다. 김 원내대표는 13일 “민심을 하늘처럼 알고 정확하게 파악해서 청와대에 전달하는 게 여당의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라며 “노 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정 의장이 (당의 의견을) 보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총리가 사의를 나타낸 것은 아니다”라며 유임론 쪽을 강조했던 청와대는 “답답하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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