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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3인가구 한끼 3500원…말문이 막혔다

등록 2010-08-01 20:21수정 2010-08-01 22:40

김소연 기자(오른쪽)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최저생계비 체험 3인가구에서 박미영(가운데)씨 모자와 저녁을 만들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A href="mailto:rhee@hani.co.kr">rhee@hani.co.kr</A>
김소연 기자(오른쪽)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의 최저생계비 체험 3인가구에서 박미영(가운데)씨 모자와 저녁을 만들고 있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가장이 저녁 사먹으면 나머지 식구 굶어야
우유 1개 사면서 반찬값 줄어들라 눈물 ‘핑’
옷 한벌 못사고 사회보험료는 생각도 못해
28일만에 파산…16만원 적자도 기적이었다
최저생계비로 한 달 달동네 빈곤리포트
김소연 기자 ‘최저생계비’ 체험

‘한 끼를 3000원 이내로 해결하라.’

한달 동안 참여연대에서 지급받은 최저생계비 111만919원으로 빈곤 체험을 시작한 7월1일, 최우선 과제는 3000원으로 점심을 먹는 일이었다. 현재 최저생계비 품목에서 직장에 다니는 가장의 점심 비용이 3000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문제가 생겼다. 기자의 일터인 서울 종로구와 마포구 주변에는 아무리 찾아봐도 3000원짜리 밥을 파는 식당이 없었다. 평균이 5000원이다. 인터넷을 뒤져 한 끼에 3000원 하는 밥집을 알아내긴 했으나, 갔다 오는 데만 30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어 포기했다. 3000원으로 가능한 점심은 라면과 김밥, 떡볶이 등 분식뿐이다.

첫 일주일은 결국 혼자서 분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부실한 식사보다, 혼자 먹는 기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왕따’가 된 것 같아 힘들었다. 할 수 없이 일주일에 한 번은 직장 동료들과 밥을 먹었고, 한 끼니에 5000~7000원을 써야 했다. 점심값 평균인 3000원을 맞추려고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도시락을 쌌다. 반찬으로 김치를 가져갔다가 기자실에 냄새가 퍼지는 바람에 하루 종일 민망해한 적도 있다. 보험일을 하는 희망이 어머니도 점심값을 가능하면 3000원 수준에 맞췄다.

점심보다 더 큰 문제는 저녁식사였다. 최저생계비로 잡힌 3인가구의 한 끼니 식사 비용은 평균 3500원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직장에 다니는 가장이 밖에서 3500원짜리 저녁을 먹으면, 집에 있는 두 식구는 굶어야 한다. 말문이 막혔다. 7월 내내 저녁 약속을 전혀 잡을 수 없었다. 물질적 결핍은,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달동네 장수마을은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삼선공원 방향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20분가량을 걸어가야 한다. 밤 기온도 30도 이상으로 느껴지는 어느 더운 날, 배고픈 퇴근길에 비탈길을 오르다 보니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5분 남짓 망설인 끝에 1000원짜리 바나나우유를 사서 마셨다. 1000원은 어묵이나 두부를 사서 ‘괜찮은’ 반찬을 만들 수 있는 돈이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가격표들이 둥둥 떠다니고, 우유 하나 마음 편히 마실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눈물이 핑 돌았다.


교육비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다. 최저생계비에서 3인가구의 교육비는 4만9844원(학습지·참고서)이다. 희망이는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 영어와 수학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한달에 각각 15만원씩 30만원이 든다. 학원 두 곳을 보낼 경우 교육비에서만 25만원가량이 적자가 난다. 식료품비와 교통·통신비 등 다른 분야도 예산이 빡빡해 부담이 너무 컸다. 어머니에게 학원을 한 곳만 보내자고 제안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하는 게 다 제 탓 같아요. 학원비가 부담스럽지만 차라리 먹는 것을 아끼는 게 나아요.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아이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하거든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있으니 불안하죠.” 보험일을 하면서 혼자 아이를 키워온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난색을 표시했다. 희망이도 학원을 원했다. “방학 때 친구들을 만나려면 학원에 가야 해요. 집에 혼자 있는 것도 심심하고요.”

상의 끝에 영어학원은 중단하기로 했다. 대신 아이를 혼자 놔둘 수 없어 한달에 2만5000원 하는 손글씨(POP)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7월 중순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가 있었던 터라, 퇴근 뒤 집에서 희망이에게 국어와 사회,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미안함을 대신했다.

어쨌든 교육비는 12만5156원이 초과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87.4%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1인당 평균 학원비는 24만5000원이다. 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최저생계비에는 반영돼 있지 않다.

어이가 없기는 교통·통신비도 마찬가지다. 최저생계비 품목을 확인해보니, 휴대전화는 아예 필수품에서 빠져 있었다. ‘0원’이란 얘기다. 한부모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에게도 휴대전화가 ‘필수품’이다. 허례허식이 아니라,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신속히 연락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 가족 세 사람의 휴대전화 비용 14만2000원은 고스란히 초과 금액이 됐다.

최저생계비로 버틴 지 28일째, 결국 파산을 하고 말았다. 최저생계비에서 비중이 가장 큰 식료품비를 줄여보려 애썼지만 2만7989원이 초과됐고, 교육비(-12만5156원)와 교통·통신비(-16만1484원) 등에서 적자폭이 커지면서 111만919원은 바닥이 났다. 한달 체험을 마친 31일에 계산해 보니, 세 식구가 모두 127만4470원을 써 16만3551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이만큼 버틴 것도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옷이나 신발은 전혀 사지 않았고,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도 내지 않았다. 외식은 물론 집에서 삼겹살도 한 번 구워 먹지 못했고, 교양·오락비로는 3500원(영화잡지)을 쓴 게 전부다. 특히 여름이라 연료비가 ‘0원’이었고, 가족 가운데 크게 아픈 사람이 없어 보건의료비도 거의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최저생계비만으로는 한달을 ‘생존’할 수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를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품목별로 잡혀 있는 최저생계비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아낀다고 아꼈지만 세 식구 앞엔 적자 가계부가 놓였다. 당장 오늘 쓸 돈이 부족한 탓에 미래를 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이나 어머니가 갑자기 큰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우리 식구는 그 순간 극빈층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가진 것이 없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일상을 따라다녔다.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황에서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삶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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