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 3. 논제 따라 구상하기
논제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가족관은 무엇인가
서론
문제 상황과 앞으로 논의할 문제를 제시한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 세계관이 팽배해지면서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인간 관계의 근본 토대가 되는 가족 관계가 물질적 세계관에 의해 지배되면서, 부부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 자식의 관계마저도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야. 이러한 현실에서 바람직한 가족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어.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가장 올바른 가족관이 무엇인가를 논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본론1 지문 (가)의 논지를 밝혀 낸다. 가정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제공해 주지.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헌신적이어서 자녀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양육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해. 지문 (가)는 가족의 역할이 가족 구성원들을 키우고 보살피는 것을 넘어서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지. 부모의 사랑이 지나쳐서, 자녀가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틀 속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야. 아울러, 부부 관계에서도 아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고 집안에서 살림이나 하고 남편의 사랑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로 여기는 모습도 거부되어야 한다는 거야. 이처럼 지문 (가)는 키우고 보살피는 기존의 가족 개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말하자면 과거와 같이 가족 구성원이 애정과 안정, 그리고 헌신이라는 명분 아래 서로의 사적 정서를 교환하는 것이 오히려 오늘날에는 구속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 확실히 오늘날의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정과 관련한 이러한 전통적 덕목들에 안주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아. 사회는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전통적인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사라져 가고 있어. 농촌 공동체 의식은 향수(鄕愁)처럼 우리를 매혹시키지만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유아기적 퇴행을 허용할 만큼 자비롭지 않아. 본론2 (가)의 논지를 근거로 하여 (나)와 (다)에 나타난 가족관의 차이를 밝힌다. 이런 전제에서 (나)와 (다)의 가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많은 면에서 공통점이 보여. 우선 이 두 지문은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는 데에는 일치점을 보이고 있고,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각자의 독립성도 강조하고 있지. 그렇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해이고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다)에서 보살펴 드리겠다는 자식들의 제의를 모리가 거절한 이유는 가족 구성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의미가 더 크지. 그 사랑은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이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배려이고 ‘가장 깊이 서로 엮이’게 되는 전통적인 정서의 다른 표현이야. 이에 반해 (나)는 보다 현대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그것은 배려와 보살핌보다는 각자, 혹은 각자의 일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하지. 곧, 결혼은 여성이 안심하며 기댈 수 있는 보호막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여성이 자신만의 일을 가질 때 비로소 인생의 참된 기쁨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거야. 본론3 가족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농촌 공동체 생활과 유교 문화 속에서 형성된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에 큰 가치를 두고 살아 왔어.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전통적 가족은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지.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고, 독신 가구가 증가하며, 동거 가구와 동성 가구가 등장하는 등 그 변화는 걷잡을 수 없어. 이 같은 현상을 ‘가족의 위기’로 보아 전통적 가족 관계의 회복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는가 하면, 가족의 해체 현상을 수용해야 할 사회적 변화로 바라보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아. 현대 사회의 산업화는 경제와 사회 구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까지도 변화시켰어. 곧, 산업화와 더불어 유입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가족 제도 안에 투영되면서 전통적 가족의 형태를 크게 바꾸어 놓았지. 더욱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변화는 산업 사회의 가족 제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핵가족까지도 또 다른 분화의 길을 걷게 하고 있어.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야.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만을 이른바 ‘정상 가족’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특정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 가족으로 보는 것은 사실의 측면에서도, 가치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지. 우선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특정 가족이 통계상 지배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나아가 가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규범화함으로써 개인의 다양한 삶의 기회를 제약하는 것은 옳지 못해. 그러므로 이른바 ‘정상 가족’만을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가족 형태는 이른바 ‘결손 가족’이라고 하는 편파적 시각은 버려야 해. 한 부모 가족, 1인 가구도 이제는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야. 이를 전통적인 가족 개념으로만 바라본다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거야.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시각이야말로 도리어 가족의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친밀한 인간들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그 형태가 바뀌고 있을지언정 그 의미까지 변화된 것이 아니야. 오히려 한 부모 가족이나 1인 가구가 이웃으로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는 ‘열린 가족’으로서의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가족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확대될 수 있어. 가족의 형태와 기능이 전통적인 것과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돼. 결론 이제까지 논의를 요약하면서 제언이나 전망을 한다. 인간의 삶의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하지. 어떤 사회적 관계도 영원할 수 없으며, 가족 제도 또한 예외가 아니야. 농경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가족 제도가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는 계속될 거야.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 제도가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해. 따라서, 특정 형태의 가족을 정형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 체계로서 가족을 이해해야 해. 가족의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해 전통 사회에서 통용된 가족 윤리로 복귀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아. (나)의 지문이 말하는 바가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의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야. 물론, 가족 구성원 간에 민주적인 인간 관계와 정서적인 교감을 살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때 약화된 가정의 역할이 회복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나 보살핌, 혹은
안정이라는 명분 속에 은폐된 의존적인 자세는 현실의 수많은 난관들로부터 도피하는 퇴행적인 자아를 생성해 낼 수 있어. 자아는 자기를 현실 속에서 실현해 나감으로써 성장하지. 이러한 성장이 정지될 때 그 내적 불만이 가족 간의 불화와 반목으로 확대돼. 진정한 가족 관계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그 안에서 홀로’서지 않으면 안 돼.
여수여자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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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1 지문 (가)의 논지를 밝혀 낸다. 가정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함과 편안함을 제공해 주지.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헌신적이어서 자녀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양육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해. 지문 (가)는 가족의 역할이 가족 구성원들을 키우고 보살피는 것을 넘어서서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지. 부모의 사랑이 지나쳐서, 자녀가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틀 속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거야. 아울러, 부부 관계에서도 아내를 동등한 인격체로 대접하지 않고 집안에서 살림이나 하고 남편의 사랑을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 존재로 여기는 모습도 거부되어야 한다는 거야. 이처럼 지문 (가)는 키우고 보살피는 기존의 가족 개념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어. 말하자면 과거와 같이 가족 구성원이 애정과 안정, 그리고 헌신이라는 명분 아래 서로의 사적 정서를 교환하는 것이 오히려 오늘날에는 구속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 확실히 오늘날의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정과 관련한 이러한 전통적 덕목들에 안주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아. 사회는 다양하게 분화되었고 여성들의 사회 참여도 활발하게 전개되어 전통적인 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사라져 가고 있어. 농촌 공동체 의식은 향수(鄕愁)처럼 우리를 매혹시키지만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유아기적 퇴행을 허용할 만큼 자비롭지 않아. 본론2 (가)의 논지를 근거로 하여 (나)와 (다)에 나타난 가족관의 차이를 밝힌다. 이런 전제에서 (나)와 (다)의 가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많은 면에서 공통점이 보여. 우선 이 두 지문은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는 데에는 일치점을 보이고 있고, 가족의 구성원들은 모두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어.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 각자의 독립성도 강조하고 있지. 그렇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해이고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다)에서 보살펴 드리겠다는 자식들의 제의를 모리가 거절한 이유는 가족 구성원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라는 의미가 더 크지. 그 사랑은 ‘타인에 대해 완벽한 책임감’이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배려이고 ‘가장 깊이 서로 엮이’게 되는 전통적인 정서의 다른 표현이야. 이에 반해 (나)는 보다 현대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그것은 배려와 보살핌보다는 각자, 혹은 각자의 일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하지. 곧, 결혼은 여성이 안심하며 기댈 수 있는 보호막이 결코 될 수 없으며, 여성이 자신만의 일을 가질 때 비로소 인생의 참된 기쁨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거야. 본론3 가족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농촌 공동체 생활과 유교 문화 속에서 형성된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에 큰 가치를 두고 살아 왔어.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전통적 가족은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지.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고, 독신 가구가 증가하며, 동거 가구와 동성 가구가 등장하는 등 그 변화는 걷잡을 수 없어. 이 같은 현상을 ‘가족의 위기’로 보아 전통적 가족 관계의 회복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는가 하면, 가족의 해체 현상을 수용해야 할 사회적 변화로 바라보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아. 현대 사회의 산업화는 경제와 사회 구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까지도 변화시켰어. 곧, 산업화와 더불어 유입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가족 제도 안에 투영되면서 전통적 가족의 형태를 크게 바꾸어 놓았지. 더욱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변화는 산업 사회의 가족 제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핵가족까지도 또 다른 분화의 길을 걷게 하고 있어.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야.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만을 이른바 ‘정상 가족’으로 보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특정한 형태의 가족만을 정상 가족으로 보는 것은 사실의 측면에서도, 가치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지. 우선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특정 가족이 통계상 지배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나아가 가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 가지 삶의 방식만을 규범화함으로써 개인의 다양한 삶의 기회를 제약하는 것은 옳지 못해. 그러므로 이른바 ‘정상 가족’만을 인정하고 그렇지 못한 가족 형태는 이른바 ‘결손 가족’이라고 하는 편파적 시각은 버려야 해. 한 부모 가족, 1인 가구도 이제는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야. 이를 전통적인 가족 개념으로만 바라본다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거야.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시각이야말로 도리어 가족의 위기를 불러오는 요인이 될 수 있어. 하지만 친밀한 인간들끼리 모여 사는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그 형태가 바뀌고 있을지언정 그 의미까지 변화된 것이 아니야. 오히려 한 부모 가족이나 1인 가구가 이웃으로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는 ‘열린 가족’으로서의 공동체를 형성한다면 가족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확대될 수 있어. 가족의 형태와 기능이 전통적인 것과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돼. 결론 이제까지 논의를 요약하면서 제언이나 전망을 한다. 인간의 삶의 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하지. 어떤 사회적 관계도 영원할 수 없으며, 가족 제도 또한 예외가 아니야. 농경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가족 제도가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변화는 계속될 거야. 사회 변화에 따라 가족 제도가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해. 따라서, 특정 형태의 가족을 정형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사회 체계로서 가족을 이해해야 해. 가족의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해 전통 사회에서 통용된 가족 윤리로 복귀하는 것이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아. (나)의 지문이 말하는 바가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의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자아로 성장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야. 물론, 가족 구성원 간에 민주적인 인간 관계와 정서적인 교감을 살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가질 때 약화된 가정의 역할이 회복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가족 간의 사랑이나 보살핌, 혹은
박용성/여수여고 교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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