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 와이즈멘토 이사, 곰TV 과학 강사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공공도서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좋은 독서환경을 만들어주는 책임은 대체로 부모의 몫이다. 얼마 전에 초등학생 자녀 두명을 두고 있는 대학 동기가 ‘우리집 애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집에 책보다 재미있는 것을 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의 학력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렇게 된 요인으로 ‘게임’을 지목한다. 부모들은 집안에 게임기가 돌아다니고 PC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깔리는 순간, 독서를 통해 재미를 느끼려는 열망이 큰 폭으로 삭감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터넷 사용을 시작하는 시기도 되도록 늦추는 것이 좋다. 우리집 여섯 살짜리 첫아이가 사용하는 PC에는 아직 인터넷 선이 물려있지 않다.
다양한 책들을 되도록 많이 집안에 두는 것도 중요하다. 가끔 우리집에 와본 사람들이 놀라는 게 두 가지 있다. 첫번째로 놀라는 것은 거실이 서가로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낡고 작은 브라운관TV가 한켠에 놓여있는 것을 빼면, 거실 두 면이 모두 책으로 덮여있다(대부분 아이를 위한 책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또하나 놀라는 점이 있다. 이 책들이 대부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첫아이가 가장 탐독하는 책은 90년대 초반에 발간된 공룡 만화책이다.
요새 가정을 보면 기껏해야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이들이 어릴 적 보던 책들이 집집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쌓여있다. 이것들은 결국 폐지업자에게 넘어갈 운명이다. 이런 것들을 야금야금 얻어온 것들이 우리 집의 훌륭한 장서(?)의 원천이다. 물론 최소한 몇 년에서 심지어 일이십년 된 책들로서 지금 기준으로는 인쇄상태가 불만스러운 것들도 많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나는 70년대에 이것보다 훨씬 못한 책들에서도 충분히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되도록 다양한 유형의 책들을 얻어오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학부모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학습만화를 읽히는 게 좋냐’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만화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이 아니다. 학습만화도 매우 높은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중고생이나 심지어 어른들이 읽어도 도움되는 학습만화가 많으니, ‘만화’라는 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이유가 없다. 또한 책의 범위를 스토리와 주제가 뚜렷한 것들로 한정하지 말기 바란다. 각종 도감이나 지도 등을 들여다보는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한글을 깨친 지 얼마 안 된 첫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책을 꺼내들고 한글자 한글자 읽어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뿌듯하다. 자녀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절대로 주위를 산만하게 하지 말고 그대로 두기를 바란다. 당신의 자녀는 지금 고도의 지적 학습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은 어떠한 주입식 교육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지적 자산이다.
이범 와이즈멘토 이사, EBS·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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