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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판정패 당한 수능등급제

등록 2008-01-27 15:18수정 2008-01-27 15:31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이명박 정부의 새 대입제도가 발표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당장 학생들이 혼란에 빠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수능이 등급제로 가든 점수제로 가든 어차피 상대평가란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등급을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과 점수를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수능이 변별력 요소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에서, 차라리 등급제보다는 점수제가 혼란이 덜하다. 등급제 하에서는 ‘분명히 수능 총점은 내가 더 높은데 등급으로 환산한 점수는 쟤가 더 높은’ 현상이 종종 벌어지고, 이로 인해 수험생들은 뭔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등급제는 왜 나타난 것일까?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새 대입제도를 발표할 때, 그 뼈대는 ‘학생부(특히 내신성적) 위주 선발’과 ‘수능 등급제’였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었다. 학생부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되, 수능 등급을 자격기준으로 활용하라는 의도였던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서울대와 이른바 상위권 사립대들이었다. 서울대는 2005년 이른바 ‘통합교과형 논술’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논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상위권 사립대들은 다소 반응이 달랐다. 전국적으로 수능성적이 내신성적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오는 고등학교가 100여개 정도 있다. 특목고, 비평준화지역 명문고, 강남 등 일부 고학력지역의 학교들이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학교 출신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대학이 바로 상위권 사립대들이다. 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이 대학들은, 수능 영역별 등급을 점수화해 변별력 요소로 활용할 궁리를 했다.

마침 2004년에 발표된 정부의 대입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능 영역별 등급을 지원자격으로 활용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고 되어있다. ‘적극 권장’이니, 꼭 따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수능 등급을 변별력 요소로 삼아도 되는 것 아닌가…. 상위권 사립대들은 2006년부터 수능을 변별력 요소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슬슬 흘리기 시작했고, 교육당국은 수수방관하다가 2007년 봄에 내신성적 반영비율을 놓고 이 대학들과 한판 승부를 펼쳤다. 물론 그 결과는 교육당국의 판정패였다.

수능 등급제는 (학생부 위주로 선발하고) 수능을 자격기준으로 활용하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일부 대학에서 변별력 요소로 활용했다. 그런데 변별력 요소로 활용하는 한, 차라리 점수제가 더 공정하다. ‘공정함’이 곧 ‘성적으로 줄세우기’와 등치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제 와서 등급제가 마치 최후의 보루라도 되는양 부르짖는 것은 ‘죽은 자식 ○○ 만지기’에 불과하다. 애초에 2004년에 발표된 대입안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고, 교육당국은 이를 조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제 와서 등급제를 주장해 봤자 수험생들의 냉소를 살 뿐이다. 내신성적 반영비율을 높이려고 해봤자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복원시킬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2007년 11월 12일치 본란의 ‘내신위주 선발 긍정적 효과 살리는 길’ 참조)

수능 점수제를 긍정하자. 내신성적의 긍정적 측면을 살리려면, 내신성적 반영비율을 높이는 게 아니라 내신성적 위주로 선발하는 전형(서울대 지역균형선발 같은)의 정원비율을 높여야 한다. 참고로 이명박 당선인을 배출한 고려대의 내신위주 선발인원은 0%이다.

이범 그래텍(곰TV) 이사, 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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