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무료 인터넷강의를 준비하던 2003년 말에, 고등학교 후배인 정재승 교수(<과학콘서트>의 저자, 카이스트(KAIST)바이오시스템학과)를 찾아가 의견을 물었다. 그랬더니 ‘무료로 강의한다 해도 어차피 주입식 교육 아니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상당히 신랄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 아무리 잘난 스타강사라 해도 결국 학원강사가 하는 일은 주입식 교육이고, 주입식 교육으로 ‘탐구와 발견의 노하우’를 전수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니까. 가뜩이나 물고기를 잡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스타강사는 물고기를 잡아 요리한 뒤 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학생의 입속에 밀어넣어주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하여튼 그의 지적 덕분에 내가 하고있는 무료강의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가능해졌다.
스타강사가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는 또하나 있다. 가르치는 내용이 인류 첨단의 지식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내가 가르치는 과학의 예를 들자면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물리나 화학은 20세기 초반의 발견을 넘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수학은 (집합론 등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18세기 이전에 밝혀진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걸 잘 버무려서 학생들의 머릿속에 최고로 잘 주입하는 재주가 있다는 이유로 연수입 십몇억씩 기록한다면 확실히 과도한 것이다(일억몇천 쯤이면 몰라도). 뉴턴도 자신의 업적을 ‘과거 거장들의 업적에 벽돌 한장 올려놓은 것’에 비유했는데, 뉴턴이 벽돌 한장이라면 스타강사는 티끌 하나 정도나 되려나.
혹자는 스포츠스타나 연예계스타의 엄청난 수입과 비교해 스타강사의 수입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박찬호나 이효리가 비정상적 사회구조로 인해 초과이윤을 얻었다거나, 그들이 융성함으로 인해 국민의 허리가 휘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스포츠계나 연예계가 한국경제의 블랙홀은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사교육판을 단순한 시장으로 간주해서는 곤란하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기본적인 싸가지가 있는 인간이라면, 적어도 교육과 주택 문제에 관해서 자유방임적 시장원리를 옹호해서는 곤란하다.
한 대표적인 스타강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걸 보았다. 그 인터뷰 기사를 보니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반영’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이 떠오른다. 스타강사는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다. 단과강사의 세계는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 일상화된 황량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고단한 투쟁 끝에 최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되는 과정에서, 자연히 승자독식의 원리가 몸에 배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했으리라.
그에게 한 영화의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홍상수 감독, <생활의 발견>) 그의 이력상 그도 틀림없이 젊은 시절 한때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반영’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적용하는 순간, 괴물이 되기를 거부하는 비판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비판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이범 그래텍(곰TV) 이사, EBS 강사
이범 그래텍(곰TV) 이사, 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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