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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치동 신드롬

등록 2008-01-06 17:10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청담동이나 압구정동 엄마한테 ‘집에 여유가 있으시잖아요’ 하고 말하면 그냥 배시시 웃으면서 ‘뭐 그냥…’ 하지만, 대치동 엄마한테 똑같이 말하면 정색을 하며 반박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강남이라도 한강변의 압구정동-청담동 지역은 테헤란로 이남의 대치동-도곡동-개포동 지역보다 가구당 평균자산과 소득이 높고, 윗세대부터 부자였던 경우가 많아 부유함이 몸에 배어있는 편이다. 전문직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사업으로 성공한 비율도 높다. 그러다보니 자녀 교육에도 이런 성향이 반영된다. 성공의 열쇠를 ‘학력’보다는 ‘사회적 트렌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시키기는 하지만 학력지상주의가 대치동만큼 심하지 않고, 글로벌 트렌드를 조망하는 시야를 얻도록 하기 위해 조기유학을 보내는 비율이 높다(물론 조기유학 비율이 높은 것은 부유함 덕분이기도 하다).

대치동은 출발선부터 압구정동과 달랐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특혜분양 사건으로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구속되는 등 처음부터 특권의 상징이었던 반면,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비록 성공리에 분양되기는 했으나 도로포장도 제대로 안 된 형편없는 주변환경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런 대치동-도곡동-개포동 지역에는 1980년대부터 젊은 중산층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면서 한국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부와 사회적 지위를 쌓아갔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소득과 자산은 상위층에 도달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풍요와 여유가 넘치는 수준은 아니며, 자신이 전문지식을 매개로 성공한 것처럼 자녀도 똑같은 방식으로 부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를 바란다. 고도로 학력추구적인 대치동의 문화는 이처럼 ‘적당한 부’와 ‘집단적인 전문직으로서의 성공 경험’이 화학반응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치동 중심의 ‘고도로 학력추구적’인 문화는 ‘8학군’ 및 ‘학원가’와 구조적으로 결합돼 있다. 학교도 좋은 편이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학원들이 즐비하니, 특목고를 지망했다가 불합격해도 크게 실망스러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영리한 부모들은 내신성적을 고려해 일부러 특목고 진학을 기피하기도 한다(특목고 입시열기가 가장 높은 곳은 강남이 아니라 목동·중계동 일대와 일부 신도시 지역인데, 이곳들은 지역 고교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강남에 대한 경쟁심리가 강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공·사교육 여건이 좋다 보니 전입자가 줄을 잇고, 자연히 전세 거주자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타워팰리스의 경우 세입자 비율이 60%에 이를 지경이다. 즉, 타지역에서 가장 학력추구적인 성향을 가진 구성원들이 대치동 일대로 이사함으로써, 기존의 학력추구적 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이다.

이같은 대치동 문화는 아이들의 성향에 어떻게 각인돼 있는가? 우선 대치동 일대의 학생들은 절대 학습시간이 많다. 학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탈이긴 하지만, 어쨌든 공부를 많이 하니 전국 단위의 상대평가에서 대체로 유리하다. 그리고 타지역 학생들에 비해 동기 부여가 잘 돼 있는 편이다. 자기 및 부모의 인적 네트워크 속에 역할 모델을 할 만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다 보니, 미래의 자기 이미지도 막연하게나마 전문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고려는 학습동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치동 문화는 특정한 사회역사적 조건과 기반 속에서 탄생하고 재생산된 것이다. 그 조건과 기반이 유지되는 한, 대치동 일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학력추구적 문화의 본산으로서 기능할 것이다. 한 두 가지 대책으로 덜해질 신드롬이 아닌 것이다.

이범 그래텍(곰TV) 이사, 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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