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몇 년 전부터 뉴라이트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설정하고 유포한 ‘자율-규제 프레임’은, 이제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의제를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논의의 지반이 되고 있다. ‘자율이냐 규제냐’라는 질문이 주어지면 누구나 ‘당연히 자율이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특히 국가 주도 경제발전 과정 속에서 상당히 구속적인 관료적 규제를 체험해온 우리로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 프레임으로 인해 아주 중요한 의제들이 가려지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 가운데 첫손 꼽히는 것이 바로 ‘국가의 책임’이라는 의제이다. 특히 교육의 영역에서는 국가의 책임이 더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육은 국민의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본권 가운데 권리이면서 동시에 의무인 항목이 거의 없음을 고려해 보면, 교육이 매우 특이한 영역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국가가 교육을 의무로서 강제했다면, 그 대가로 뭔가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교육과 관련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첫째, 국가는 학생의 기본권을 책임져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학생의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는 적극적인 예방책을 시행하고, 만약 실제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결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최근 이명박 정부가 ‘학교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0교시나 우열반 등의 개설 여부를 시도교육청의 자율적 판단에 맡겨놓은 것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한 정책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자율권을 넘겨받은 이는 누구인가. 교육감과 교장, 즉 교육관료들 아닌가. 교육감이나 교장의 자율성은 종종 교사나 학생의 자율성과 충돌한다. 예를 들어 교육감과 교장의 자율적 재량에 따라 0교시와 수준별 이동수업을 실시한다면, 학생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자율성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이다.(수준별 이동수업 때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일부 학교가 있는데 이는 예외로 한다.) 결국 자율권을 관료에게 독점적으로 주고 교육현장에서 대면하는 교사와 학생의 자율권을 확대하지 않는 정책을 ‘학교 자율화’라고 하다니, 한마디로 우스운 일이다.
둘째, 국가는 최저 학력을 책임져야 한다. 교육의 목표가 학력 신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 지식을 검색하고 정리하고 창조하는 기능은 이전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학력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여러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마땅하다. 특히 국가가 최저 학력의 문제를 방기할 경우, 교육 여건이 좋지 않은 저소득층 학생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학력진단평가(일제고사)가 부활되고 수준별 이동수업(과목별 우열반) 시행 여부가 시도교육청 자율에 맡겨지는 등, 학생들간의 경쟁을 격화시키는 조처가 잇따라 시행되고 있다. 얼핏 보면 이런 정책들이 모두 학력 신장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최저 학력을 책임지려는 자세’의 일환으로 오인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알아서 경쟁하라’는 태도는 학생들의 학력을 구체적으로 책임지려는 자세와는 판이하다. 핀란드의 예에서 보듯이, 경쟁을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학력을 상향 평준화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이범 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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