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안광복 교사의 인문학 올드 앤 뉴 / [난이도 수준-고2~고3] 6. 아파트, 대한민국을 접수하다 - 거주 문화의 비밀
7. 나의 투쟁 - 파시즘의 유혹
8. 학교, 군대, 교도소는 왜 닮은꼴일까? - 근대가 현대가 되려면
〈나의 투쟁〉〈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
아돌프 히틀러 지음, 서석연 옮김. 범우사 <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
슈테판 마르크스 지음, 신종훈 옮김. 책세상 삶이 신산스럽고 고단할 때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기 마련이다. 뛰어나고 힘센 누군가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단숨에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분명하게 일러주며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독일 국민들의 마음상태가 바로 이랬다. 수치심과 패배감, 바닥인 경제 상태와 암울한 미래. 이랬던 그들에게 히틀러는 ‘기획된 스타’와도 같았다. 히틀러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할 줄 알았으니까. 누구 때문에 그대들은 불행한가? 바로 유대인들 때문이다. 그들이 농간을 부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들에게 복수하고 자존심을 되찾는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이제 뚜렷해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히틀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나만 믿고 따르면 된다! “군중이 애당초 그 성과가 위대함을 나타내기 전에 이념을 이해한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중략) ‘독일식 민주주의’에는 다수결에 의한 결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의 능력과 생명을 내던지도록 하는 지도자 한 사람의 결정이 있을 뿐이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가 강하게 외치는 말이다. 히틀러는 근육질의 아버지와도 같았다. 칸트를 낳은 철학자의 나라인 독일도 그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 정도로 히틀러는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을 줄 알았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독일인의 영혼을 후렸던 기법은 무엇일까? 슈테판 마르크스는 심리학에 기대어 히틀러의 유혹 기술을 조목조목 파헤친다. 그에 따르면, 나치는 이른바 ‘히치콕의 함정’이라는 최면술을 썼다. 바라는 바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것만 보려고 한다. 그래서 중요한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놓쳐 버린다. 나치 시절의 독일 국민들이 그랬다. 나치를 경험한 독일인들은 그 시기를 ‘새로운 시대’, ‘불가능이 없던 시기’, ‘힘의 시대’로 기억한다. 그만큼 열광적이고 달뜬 분위기였다는 뜻이다. 경제는 하루가 다르게 커 나갔다. 뛰어난 무기들이 속속들이 개발되었고, 프랑스와 영국은 다시 독일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이웃의 유대인들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성공에 취한 독일 국민들로서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경제가 폭발하듯 커가던 1970년대는 우리에게 ‘불가능이 없던 시기’였다. 산업역군들이 그 시기를 떠올릴 때면 자연스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그네들의 표정에는 가슴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당시는 동사무소에서조차 법보다 쥐꼬리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의 한마디가 더 위력을 떨치던 때였다. 경찰이 가위를 들고 시민들의 ‘두발 검사’를 하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서슴없이 재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독재보다 웃자라던 경제와 성공의 경험을 크게 떠올린다. 1930년대 독일국민들의 상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나아가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돈을 위해 죽지 않는다. 위대한 이상을 위해 죽을 뿐이다.” 그 시대 독일인들은 자신이 역사의 흐름을 완성해 간다고 믿었다. 폭격으로 집이 날아가도, 노력 동원이 끝없이 이어져도 불평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 앞에서라면 피로감마저 싹 가셨던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듯싶다. 어디 그뿐인가. 히틀러는 사람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보듬을 줄 알았다. 슈테판 마르크스는 나치 독일 시절을 겪었던 이들과 인터뷰를 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 그 시절 자기 역할에 큰 자부심을 품고 있었던 까닭이다. 잠수함 선원으로서, 나치 친위대 대원으로서, 군인 방송 학교 졸업자로서, 자원 입대자로서, 나치당원으로서, 그네들에게는 하나같이 자신을 인정받는 엘리트였다고 여길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만큼 히틀러의 조직관리 노하우는 특별했다. 슈테판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 국민들에서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알코올을 찾는다. 삶의 위로가 되는 순간은 취해 있는 순간뿐이니까. 끔찍하게 중독된 이들은 술만 구할 수 있다면 집과 가족도 내던져 버릴 테다. 히틀러에게 중독된 사람들이 바로 그랬다. 그러나 취한 정신으로는 제대로 된 세상을 이길 수 없다. 나치는 결국 무너졌고 독일 국민은 지금도 죗값을 치르는 중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무척 어렵다고 한다. 인생의 미래도 점점 더 암울해져가는 느낌이다. 이럴 때일수록 ‘무엇이건 가능했던’ 과거와 같이, 강한 인도자가 우리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찾아들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깬 정신으로 보기 싫은 사회의 문제들을 자꾸만 들춰내어 보게 하는 민주주의는 취한 상태를 허락하지 않는다. 확실히 민주주의 사회에는 나치 시절 같은 도취와 열정이 없다. 그러나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면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뎌낼 때 튀어나온다. 성숙한 사회는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용기와 지혜를 이끌어낼 줄 안다. 지도자에게 눈먼 박수를 보내는 개발독재보다 성숙한 민주주의가 나은 이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_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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