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단지 학습하는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자라는 곳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남은 아이들을 돌보고, 여러 예술·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고 혹시 마음이 다치지는 않았는지도 살펴야 한다. 모두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지만 교사가 이 모든 것을 담당하기엔 역부족이다. 학교는 이들을 강사로, 돌봄전담사로, 상담사로, 영양사로, 조리원으로 다루고 세상은 이들을 ‘아줌마’로 부르기도 한다.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보람과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받는 차별 사이에 이들의 삶이 놓여 있다.
<학교에 일하러 가는 사람들>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의 실제와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려 현장 취재 내용에 문학적 요소를 가미했다. <한겨레>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의 기획으로 이철 작가가 본 학교 현장을 매주 한 차례씩 모두 10회에 걸쳐 싣는다.
“한 아이가 문신을 하고 학교에 왔어요.”
월초. 날은 아직 쌀쌀했다. 아이는 저 혼자 반소매를 입고 학교에 들어섰다. 팔뚝에 새긴 문양은 선명했고, 살갗은 발갛게 부어있었다. 제 교실로 향하던 아이들의 무기력한 발걸음에 변화가 일었다. 몇몇 아이는 걸음을 멈췄고, 몇몇 아이는 방향을 틀어 교문 쪽으로 뛰었다. 날카롭게 새겨진 문양에 여러 아이가 몰려들었다. 어떤 아이는 감탄했고, 어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아이가 4층까지 오르는 동안 학교 중앙 계단엔 여느 날은 찾을 수 없었던 활기가 가득했다.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한 친구들이 있지 않았겠어요? 함께 무단으로 학교를 나갔어요. 페이스북 메시지로 수소문해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찾았어요. 달려가서 그 아이들을 데려오면서, 따라나선 친구들이 문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 살피고, 문신 한 애는 어디서 했는지, 혹시 터무니없는 돈을 낸 건 아닌지 점검하고, 혹시 모르니까 병원도 데려가고, 부모님께 연락드려서 귀가시키고. 그리고 사례회의….”
김태연(가명)씨는 중학교에서 일하는 교육복지사다. 기관에서 10년을 사회복지사로 일하다가 학교에 들어와 일한 지 4년째다. 교육복지사는 아이가 놓인 문제 상황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아이의 욕구와 필요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남다른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는 많다. 무단이탈, 학교폭력, 절도, 자해, 자살 등등. 제지하고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문제 행동에는 배경이 있다. 가정불화, 가난, 학교 부적응, 또래 갈등, 무기력 등등. 부모의 경제력과는 무관하게 아프고 힘든 사연을 짊어진 아이가 많다.
애들이 가장 화나서 하는 말
왜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요?
한 교육복지사가 가족 관계 개선을 위한 가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복지사는 아이의 이런 ‘문제’를 다룬다. 아이가 일으킨 ‘문제’에서 아이를 챙기기도 하고, 아이가 처한 ‘문제’로부터 아이를 보호기도 한다. 아이가 무단이탈 같은 문제 행동을 했을 땐 무엇보다 아이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다. 아이가 가난과 같은 문제에 처해 있다면 도움 받을 수 있는 자원과 제도에 연결해준다. 가정폭력과 같은 문제 상황에 부닥쳐 있다면 부모를 만나 부모가 스스로 경계하게 하며, 아이의 상황이 위급하다면 쉼터와 같은 청소년 보호시설로 아이를 피신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살피기도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적은 쪽지를 남긴 아이가 있었어요. 만나서 얘길 하는데 말투와 느낌이 이상한 거예요. 게다가 자기가 어디에 쓰러져 있다가 깬 적이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조사를 시작했고 학교에선 평범한 학생으로 인식하고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복지카드를 가진 장애 학생인 거예요. 뇌전증이 있는. 걔가 2학년인데 1년 동안 학교는 그걸 모르고 있던 거죠.”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밴드 해볼래?”
같이 노는 애들까지 싹 모아 찾아왔고
졸업할 땐 점수가 2배 이상 올라 있었다
책상에 엎드린 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다
복지사가 학교 안에 있어야 하는 이유
교육복지사의 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는 일이다. 이런 역할은 1990년대까지 학교 밖에서 이뤄졌다. 지역 아동센터, 청소년 센터, 청소년 쉼터, 청소년 회관 등이 중심 현장이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사고를 친’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주고, 배고픈 아이에게 끼니를 챙겨주며, 끼와 재능을 펼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 주요 활동이었다. 믿을 만한 어른의 관심과 기대는, 아이가 자신을 아끼고 존중할 힘을 얻는 계기가 된다.
사회복지 사업의 한 갈래였던 청소년 지원 활동이 학교로 들어오게 된 건 2003년도의 일이다. 우리 사회가 가난의 대물림과 학교폭력, 그리고 이로 인한 자살 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다. 정부가 시범사업으로 시행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지원사업’이 시작이었다. 주로 저소득층 밀집 지역의 학교를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학교와 지역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45개교였던 대상 학교는 7년 뒤인 2010년 575개교로 늘었다. 2010년엔 관련 사업에 관한 법률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학교 사회복지 사업은 교육복지 사업이라는 개념으로 재조정됐다.
2011년도에 지원 사업은 전국 규모의 사업으로 확장됐다. 명칭도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으로 바뀌었다. 가난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도 이때다. 이전 시대에 가난은 학생 개인이 처한 사적 문제, 혹은 가정 문제였다. 하지만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자원의 양극화가 깊어진 시대에서 가난은 사회 구조적 차원의 문제였고,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비롯되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했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이미 빈곤이란 말을 대신해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교육복지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교육복지사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는 학교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어요. 지역기관은 각 기관마다 고유한 성격이 있지만, 학교는 모든 아이가 다 오는 곳이에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중요한 통로잖아요.”
이주희(가명)씨는 지역교육청에서 일하는 교육복지조정자다. 교육복지조정자는 지역과 학교, 학교와 학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교육복지사가 일차적으로 학생을 대상으로 삼는다면, 교육복지조정자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주희(가명) 씨는 한 아이에게 한국 사회의 구조가 응축돼 있다고 말한다.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린 아이를 이해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교육복지사가 학교 밖이 아니라 학교 안에 있어야 할 이유라고 강조한다.
학교는 또래가 모여 저들끼리 어떻게 어울리며 살아갈지 배우고 익히는 사회화의 현장이다. 교육학자 이경숙은 자신의 책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과 어떤 것도 갖질 못한 사람들 사이에선 민주주의를 실현할 가능성이 적다고 말한다. 소통할 이유도 없고 소통할 통로도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는 다르다. 저마다 배경은 달라도 서로 소통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또래와 어울리며 저와는 다른 처지를 경험하고 이해한다. 학교가 학교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복지실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던
그 애, 21살 되더니 찾아왔어요
“너희들은 어떤 걸 하고 싶니, 하고 잘 물어봐야 해요. 근데 사실 아무도 안 묻거든요. 특히 요즘은 더 안 물어봐요. 우리 애들이 가장 화를 내는 게 왜 아무도 자기에게 묻지 않느냐는 거예요.”
교육복지사가 아이들과 일상적으로 만나는 공간은 교육복지실이다. 강보민(가명)씨는 교육복지실을 아이들이 주인인 공간이라 말한다. 특별한 용무가 없어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은 학교 내에서 교육복지실이 유일하다고 한다. 보민씨는 학교에서 일한 지 10년째다. 기관에서 청소년을 만난 이력까지 합치면 15년 차다.
“여긴 내가 주인인 공간인 거예요. 교실은 애들이 주인이 아니에요. 내 반이고 내 교실이지만 교실 문짝 앞에 붙어 있어요. 다른 반 학생 들어오면 선도. 얼마나 삭막해요.”
김희선(가명)씨는 복지실이 학생 아이가 자기 모습 그대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희선씨는 학교사회복지사 14년 차다. 아이가 복지실에서 스스로 그런 상태를 이어가는 게 좋아서 복지실 내 특별 활동을 마련하기도 하고, 그것에 흥미를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동아리로 확장하기도 한다. 모두가 아이들의 자발적 활동이다. 때론 복지실에 와 제 안 좋은 감정만을 풀고 가는 아이도 있다. 교사가 흥분한 아이를 복지실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 공간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키냐면, 우리가 특별히 하는 게 없어도 아이들끼리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역동적인 걸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복지사 선생님은 복지실에 온 아이한테 그냥 ‘잘 있었어?’, ‘뭐 먹었니?’ 일상적인 말을 건넬 뿐이에요. 하지만 이런 대화에서 나오는 변화들이 커요.”
아이들 첫마디 “선생님은 언제까지 있어요?”
교육청 지원받는 학교엔 무기계약직 복지사
시·군 지원받는 학교엔 1~2년 계약직 복지사
복지사업 궤도에 2~3년, 그렇게 흐름은 끊긴다
김미연(가명)씨가 사례 하나를 소개했다. 폭력성이 짙었던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중학생인 아이였다. 아이는 만나는 교사마다 삿대질을 하면서 싸웠다. 수업엔 관심이 없었다. 미연씨가 이 아이를 알게 된 건 아이가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이었다. 아이의 집에서 의자에 궁둥이라도 붙여보겠다며 피아노를 배우게 한다는 얘길 들어 알고 있었다. 미연씨는 아이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피아노를 칠 줄 아니 밴드를 해볼 생각이 있냐고. 정말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사업비도 없었어요. 근데 같이 노는 애들까지 싹 다 모아서 왔더라고요. 밴드 하고 싶다고. 교장 선생님한테 부탁드렸어요. 어떻게든 이 아이를 졸업시키겠다고 다짐도 드렸어요. 공모 사업 찾아서 아이 이름으로 지원서 쓰고, 외부 강사 영입해서 연습시키고, 연습 장소 알아보고, 애들이 설 수 있는 무대도 찾았어요. 그러더니 아이가 수업에 참여한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졸업할 때가 되자 아이의 점수는 30점대에서 70점대로 올라 있었다. 아이 주변의 기대가 달라지면 아이도 달라진다. 미연씨는 무엇보다 아이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연씨는 학교에서 복지사로 8년째 일하고 있다. 외부 경력까지 합치면 14년 차다.
학교 복지사의 전문성은 아이의 문제 원인을 찾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문제 유형에 따라 지역 인프라를 학교에 끌어오는 능력에 있다. 핵심은 ‘아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어른들의 안도감을 위한 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아이로부터 출발하면 아이가 필요로 하는 자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러면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아이가 필요로 하는 적절한 자원을 아이와 연결해 준다. 학교에 교육복지사가 상주하는 이유다.
보민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해 늦게 끝나는 날이 많다. 조식 사업이 있는 날이면 새벽같이 학교에 나간다. ‘샘, 샘, 샘!’ 온종일 아이들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서류 업무는 아이들이 학교를 떠난 시간 뒤에나 시작된다. 집은 잠만 자러 들어가는 ‘숙소’가 된 지 오래다. 학교에서 일한 지 10년이 됐지만, 보민씨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고용은 1년마다 공개채용 방식으로 갱신되거나 그 과정에서 해고되기도 한다.
학교 교육복지 사업은 교육청 지원사업과 시·군 지원사업으로 나뉜다. 사업 내용과 학교에서의 역할은 동일하지만 예산의 출처에 따라 교육복지사의 고용 형태는 다르다. 경기도의 경우 예산의 출처가 도교육청이냐, 시·군 지원예산이냐에 따라 ‘사업학교’와 ‘협력학교’로 구분되는데, 사업학교의 교육복지사는 무기계약직이지만, 협력학교의 교육복지사는 1년 내지 2년짜리 계약직이다. 경기도의 무기계약직 교육복지사의 수는 117명, 한 해 또는 두 해마다 고용을 갱신하는 교육복지사의 수는 141명이다.
온 마을이 한 아이 키우지 않으면
그 마을은 망한다고요
“아이들한테 ‘내년엔 선생님이 없을지도 몰라’, 얘기하는 게 죽도록 싫어요. 학교 복지 사업이 제 궤도에 오르려면 2~3년이 걸려요. 근데 이제는 애들도 알아요. 1~2년 있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걸요. 새로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언제까지 있어요?’, ‘올해까지 있어요?’ 애들이 이것부터 시작해요. 복지실 담당자가 바뀌면 오던 애들은 안 와요. 왜냐면 그 전에 있던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의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의리가 있는데 이 사람한테 내 마음을 줄 수 있어? 절대 안 해.’ 그렇게 흐름이 끊겨요.”
학교는 여전히 교과 중심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교사와 교육공무원의 처우는 분명하지만, 교과 외의 영역에서 학생과 관계를 맺고, 학생을 돌보는 역할은 비정규직 수준의 처우에 머물러 있다. 겉에서 보면 학교는 교과를 중심 삼아 아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교육 과정에서 떨어지고 밀려나는 학생이 많다. 성적이 학생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주요 수단이라면 자신을 증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 학생의 수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학교는 이런 학생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떤 학교는 복지사가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경찰차가 항시 세 대씩. 교문 앞에 말이에요. 또 어떤 학교는 복지사가 들어가고 나서 지역 주민한테 감사 전화를 받았다고 해요. 이젠 빨래를 널 수 있게 됐다고. 그 지역 지구대에선, ‘몇 년 동안 그 학교 아이들이 우리 단골 고객이었는데 처음입니다. 이 달에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게 전화했다고 하잖아요. 애들이 항상 차바퀴를 빼고, 사이드미러 떼어 가고 그랬어요. 애들이 범죄자라는 게 결코 아니라 그만큼 학교와 지역사회에 흥미 있는 게 없었던 거고, 시·군 지자체까지 학교 복지 예산을 배정하고 확대한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지난해 한국학교사회복지사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학교와 교육청, 교육지원청에서 일하는 복지사의 수는 2000여 명에 불과하다.
복지사가 학교 들어간 뒤
지역주민들 학교로 감사 전화
“이제 빨래 널 수 있게 됐어요”
지구대도 “이번달 그 학교 0명”
성적 중심 교육과정에서 밀려나도
학교·사회가 흥미와 필요 찾아줘야
방과후 동아리에서 재능을 익힌 학생들이 마을잔치에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기다려 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건 아이들한테 정말 큰 힘이 돼요. 그 사람이 힘이 있든 없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돌아봤을 때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거 말이에요. 중학교에서 복지실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하던 애가 있었어요. 중간에 다른 학교로 전학 갔는데, 이 친구가 스물한 살이 돼서 문자를 보냈어요. ‘선생님 잘 지내요?’ 만났어요. 지금 저를 만날 수 있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아빠가 때려서 창문을 깨고 도망쳤다는 거예요. 발에 깨진 유리가 박히기까지 했고. 하지만 진짜 잘 뛰었대요. 그러고는 ‘선생님 저 잘했죠?’ 이러는 거예요. 근데 그게 불쌍하지 않았어요. 전혀. 그렇게 힘 있게 제 삶을 꾸려간 거잖아요. 그리고 성인이 돼서 엄마도 찾았어요. 지금 스물두 살인데, ‘선생님 저희 뭉칠 때 되지 않았어요?’ 이래요.”
보민씨가 노조에 가입한 건 2년 전이다. 10개월씩 고용을 갱신하던 시절도 있었다. 한 달에 20만~30만원을 받던 때도 있었다. 매일 같이 아이들에게 닥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자신의 처우는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돼서 제 처우를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노조 가입을 결정하게 된 건 자신을 찾아온 학생 때문이었다.
“아이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자기는 사회복지사가 될 거래요. 선생님 보면서 사회복지사를 꿈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굳이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왜?’라고 답했죠. 근데 자기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건 고민이 아니래요. 자기는 할 건데 그다음이 고민이라는 거예요. 자기가 가만히 지켜보니까 복지사 선생님 월급도 많지 않은 거 같고, ‘선생님은 어떻게 이 일 하나만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요?’ 묻는 거예요. 자기 생각엔 투잡을 해야 할 거 같다고. 그럼 이 일에 집중하지 못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 순간 보민씨는 자신이 위태로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배로서, 다음 세대가 세상에 나올 때는 사회복지사의 일이 안정적인 일자리가 되게끔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노조 활동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경기도교육청은 시·군 지원 학교 복지 사업의 규모를 축소하려고 했다. 어제까지 헌신하며 일했던 동료가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지자체에 사업 축소 의견을 내는 일도 있었다. 학교와 지역을 연결해 교육복지 사업을 운영하는 담당자에게는 사업을 확대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비정규직의 인력 규모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경기도교육청에 소속된 비정규직은 3만5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경기도의 한 교육지원청에서 일하던 40대의 교육복지 조정사가 뇌출혈로 사망했다. 한 달씩 세 차례에 걸친 감사를 받은 후였다. ‘2016년 학교사회복지사업’을 확대했다는 것, 유치원 사회복지사를 확대 채용하는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 ‘경기도교육복지협회 발족식’에 참여를 독려하는 출장공문을 사회복지사들에게 발송했다는 것 등이 감사 이유였다.
“저는 복지사 선생님들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교육복지 사업은 무한 경쟁 구도와 승자독식이란 환경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수없이 낙오되고 있으니까. 교육복지의 목표는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는 선언 속에 있어요. 이제 교육 현장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미래가 없는 상황이 됐어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잖아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란 말이 있는데, 이제는 이걸 다시 생각해봐야 해요. 온 마을이 나서서 한 아이를 키우지 않으면 그 마을은 망한다고요.”
남상준(가명)씨는 교육복지사 6년 차다. 작년까지 학교 현장에서 일하다가 교육지원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에서 아이를 만나며 일하는 걸 좋아하지만, 학교가 처한 위기가 크다는 생각에 학교 외곽에서 학교와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그는 지난해 고인이 된 선배가 바라고 애쓰던 것이 분명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세상이 안 망하는 길’이었다. 상준씨는 고인의 뜻이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후배들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상준씨가 학교에서 교육지청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일 것이다.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품은 마음과 기운을 고개 돌려 외면하지 못한다.
이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