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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경찰·감리단이 제대로 감시했다면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등록 2013-11-01 20:40수정 2013-11-03 18:27

송강호씨는 강정마을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이끌어왔다. 2011년 4월 준설작업을 하러 강정 앞바다에 나타난 해군기지 사업단 배에 올라타 송씨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사진은 큰 걸개그림으로 만들어져 최근까지 강정 중덕 삼거리에 상징처럼 걸려 있었다. 사진 진달래산천 제공
송강호씨는 강정마을에서 제주 해군기지 반대 싸움을 이끌어왔다. 2011년 4월 준설작업을 하러 강정 앞바다에 나타난 해군기지 사업단 배에 올라타 송씨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사진은 큰 걸개그림으로 만들어져 최근까지 강정 중덕 삼거리에 상징처럼 걸려 있었다. 사진 진달래산천 제공
[토요판/커버스토리] 강정마을 마지막 지킴이, 송강호씨
▶ 죄를 지었다고 무조건 감옥에 가두진 않습니다. 큰 죄가 아니라면 불구속 재판을 하기도 하지요. “미래의 더 큰 재앙을 예방하려다 지은 죄는 무죄”라고 판결한 영국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주 강정마을 주민 송강호씨는 해군기지 오염 문제를 감시하다 공사구역 내의 바다로 잠시 들어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면 법의 잣대는 엄격해지는 걸까요? 송씨의 사례로 강정 주민들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을 짚어봤습니다.

1999년 10월19일 영국의 그리녹 셰리프 법정. 환경운동가 앤지 젤터가 법정에 섰다. 그녀는 그해 6월 스코틀랜드 패즐레인의 해군기지에 잠입해 컴퓨터, 검사장비, 연구서류 등을 호수에 던져버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그녀는 항변했다. “저희 행동의 중심은 고의적인 재물손괴가 아니라 더 큰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이었습니다.”

마거릿 김블릿 판사는 판결을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주장을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의 주장대로 무죄를 선고합니다. 법정에서 나가도 좋아요. 하지만 하나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영국 법정이 항상 무죄를 선고하지는 않아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결은 달라져요. 또 다른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해도 유죄가 나올 수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정말 조심하세요.”

이 판결은 ‘불법을 저지르는 국가를 감시하는 시민의 행동은 설사 위법적 요소가 있더라도 무죄’라는 판단에 기반하고 있다. 옳지 않은 국가의 정책과 법에 대항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이 판결은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앤지 젤터는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계속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강정 주민 송강호(55)씨는 이 판결이 부럽다. 그는 제주 강정 앞바다에 건설되는 해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를 감시하다 경찰에 붙잡힌 지 4개월째다. 제주교도소에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강정마을 해양감시단장이었다.

공사 공정률 50%,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사건이 벌어진 것은 7월1일 오전 10시께였다. 해군기지 공사장 옆 멧부리 바위 인근에서 카메라로 해군기지의 불법 공사 여부를 상시 감시하던 박인천(43)씨가 송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해군기지 사업단이) 멧부리 바위 위에 올려놨던, 파손된 오탁수 방지막(오염물질의 바다 유입을 차단하는 막)을 다시 공사장 안으로 끌고가는 걸 봤어요.”

오전 11시께 해군기지 공사장 내 준설선 두 척이 불량 오탁수 방지막 옆에서 흙을 파내고 정체불명의 흙탕물이 장시간 바다로 퍼지고 있는 장면이 잡혔다. 송씨와 해양감시단은 오후 2시께 제주 서귀포해양경찰서에 전화로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공사는 계속됐다.

강정마을 앞바다의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지는 오염물질에 취약하다. 송씨의 마음이 급해졌다. 오후 3시25분 송씨와 그의 동료 박도현(50·수도사) 수사는 강정포구에서 보트를 타고 해군기지 공사장 구역으로 들어갔다. 바다이긴 했으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경찰에는 미리 통보했다. 몸체가 훼손된 오탁수 방지막 사진을 찍었다. 불법공사 증거였다. 해군기지 공사를 맡고 있는 삼성물산과 대림산업은 그제야 공사를 중지했다.

경찰은 보트를 타고 출동했다. 해군기지 사업단 쪽의 신고를 받고서였다. 경찰 출동의 목적은 송씨 연행이었다. 바다 위에서 임채욱 서귀포해양경찰서 형사계장과 송씨의 논쟁이 시작됐다.

“송강호씨, 여기 계시면 공사업체에 대한 업무방해에 해당합니다. 나가십시오.”

“경찰이 불법공사 현장을 카메라로 채증해 주세요. (해수면 위에서는 안 보이는) 오탁수 방지 막체가 (해수면 아래에서 확인해보면) 하나도 없어요. 그걸 해주시면 나가겠습니다.”

실랑이가 계속되자 경찰은 현장에서 송씨와 박 수사를 체포해 구속했다. 송씨와 박 수사가 공사 구역에서 한 일이라고는 사진을 찍은 게 전부라고 항변했지만 경찰과 검찰은 업무방해라고 판단했다.

7월1일 해군기지 사업단이
파손된 오탁수 방지막을
공사장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지 않았다
흙탕물이 바다로 퍼져 나갔다

송강호씨는 보트를 타고 나가
훼손된 방지막 사진을 찍었다
출동한 경찰은 송씨를 체포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인근 연산호 군락지는 괴사했다

송씨는 지금도 한라산 자락 검은 오름 아래 제주교도소에 갇혀 있다. 반면, 불량 오탁수 방지막을 설치하고 공사를 강행한 관계자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10월15일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강정마을회 등의 공동조사 결과 해군기지 500m 인근 해수면 아래의 연산호 군락지는 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씨는 감옥에서 묻는다. “법이 과연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나요?”

10월18일 오전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한라산의 구름 이불을 덮은 설문대 할망은 배를 깔고 누워 제주 곳곳을 굽어살핀다. 10만년 전 한라산에서 쏟아져나온 뜨거운 용암이 강정 앞바다에 몸을 식혀 구럼비 바위가 되어갈 때도, 지난해 봄 인간이 설치한 폭약에 그 바위가 갈기갈기 찢겨갈 때도 설문대 할망은 그 모습 그대로 누워 있었다.

2012년 봄 구럼비 바위 폭파가 시작될 때만 해도 매일 아침 사이렌 소리가 울렸던 강정마을은 흡사 전쟁터였다. 공사 공정률이 50%에 이르는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웠다. 감귤 추수철을 맞은 강정마을 농사꾼들은 밭에서 수확하느라 분주했다. 시위라고 할 것은 문규현 신부가 공사장 정문 앞에서 집행하는 미사 외에는 딱히 없었다. 태극기를 내건 집, ‘해군기지 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을 내건 집들 사이로 구럼비 바위를 스친 바닷바람만 말없이 부대끼고 있었다.

바다에서 송씨 폭행한 해군 대원은 무죄

송강호씨는 이 마을 주민이다. 그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이끌어왔다. 본디 이곳에 살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강정이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던 2011년 3월께 마을로 이사를 왔다.

송씨는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면서 국제평화운동단체 ‘개척자’들의 대표다. 이 단체는 평화를 위협받는 국제분쟁지역에 회원들을 보내 다양한 평화정착 운동을 편다. 서로를 적으로 알고 살육을 멈추지 않는 극단의 갈등 현장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증오 대신 화해를 선택하도록 가르치는 캠프를 연다.

종족간 분쟁이 극심하던 르완다에서, 군벌 세력들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 보스니아에서, 인도네시아와 전쟁을 치른 작은 독립국 동티모르에서 이들은 활동해왔고 그 중심에 송씨가 있었다.

“하나님은 고통과 눈물, 슬픔이 있는 현장에 갈 사람을 찾고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그런 현장에 가야 해요. 하나님이 계신 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겁니다.”(송강호 책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송씨가 제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단의 아체 주에 머무를 때였다. 쓰나미로 집과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송씨는 제주도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나라가 정말 전쟁 없는 나라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송씨에게 제주는 이때부터 ‘언젠가 한번 꼭 가봐야 할 곳’ 이었다.

그러나 2007년 우리 정부가 강정 앞바다를 메워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게 송씨에게는 모순처럼 보였다. 2011년 강정마을을 찾은 송씨의 눈에 제주는 더이상 평화의 기대를 품을 만한 섬이 아니었다.

2007년 4월26일 강정주민 1900명(유권자 1050명) 중 87명이 참석해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안’을 통과시킨 뒤 강정마을은 4월27일 제주도청에 해군기지 유치를 권유했다. 그러나 해군기지에 대해 마을회 자체의 꼼꼼한 검토가 없었다며 주민들은 그해 8월 재투표를 실시했고 725명이 참석해 680명이 해군기지 유치에 반대했다. 해군기지 유치를 이끈 윤태정 전 강정마을회장은 해임됐다.

정부는 민주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해군기지 유치안에만 정당성을 부여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강정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는 무시됐다. 2012년 3월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기지터의 원래 주인인 구럼비 바위 일부를 폭파했다. 제주해군기지를 위해 정부는 8만여평의 토지를 매입했는데 토지 소유자 100여명 중 60명 이상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토지를 강제매입 당했다.

“어떻게 한 지역사회의 천년 운명을 결정할 중대사를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송강호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선택한 것은 기도였다. 매일 새벽 구럼비 바위를 찾아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구럼비 바위는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검은 통바위다. 물질을 하고 돌아오는 강정마을 해녀들은 바위틈으로 솟아오르는 할망물(용천수)로 몸을 씻기도 했고, 토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송씨는 구럼비 바위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하나님,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을 허물어 막힌 담들을 허물고 평화를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을 희생하여 갈등과 불화의 장벽을 허물고 화해의 길을 만들어 가게 하옵소서.”(송강호씨 방에서 발견된 ‘구럼비 기도문’ 일부)

그러나 그가 맞닥뜨린 건 해군의 폭행뿐이었다. 2011년 9월 구럼비 바위로 갈 수 있는 육상 길목에 해군기지 담장이 쳐지자 송씨는 바다를 헤엄쳐 구럼비 바위를 출입했다. 2011년 10월2일도 그랬다. 다만 이날은 해군 대원 둘이 뒤쫓아왔다.

대원 두 명은 “여기는 해군 관할 구역이다”며 송씨의 헤엄을 제지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해군의 행동으로 볼 수 있었다. 뒤이어 폭행이 시작됐다. 폭행 도중 해군은 송씨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향해 ‘브이(V) 자’를 그리며 희롱하기도 했다.

군검찰의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해군 대원 이아무개씨 등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송씨의 해상장비인 오리발을 벗겨낸 뒤 가슴과 배, 옆구리, 정강이, 무릎 부위 등을 20회에 걸쳐 때렸다. 해군기지 공사구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해도 군이 민간인을 수중 폭행하는 일은 허용될 수 없는 국가폭력이었다.

그러나 군검찰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업무로 인한 것으로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며 해군 대원의 폭행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민간인이 바다 한가운데서 군인을 둘러싸고 폭행했다면 엄벌에 처해졌겠지만 군인의 민간인 폭행은 업무상이라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졌다.

과연 감옥에까지 갇힐 중범죄인가

강정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송씨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자기 일도 아닌데 여기 와서 저렇게 군인에게 맞아가면서까지 기도하러 가는 걸까.’ 송씨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어 대신 인터뷰에 나선 그의 부인 조정래(56)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구약성서 이사야서 2장4절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제주에 실현하려는 게 송 박사의 생각이었어요.”

송씨를 구속으로 이끈 혐의는 업무방해다. 그는 2012년 4월2일 구럼비 바위 발파를 막는 도중에 연행됐다가 9월28일 보석으로 풀려난 뒤 지난 7월1일 재구속될 때까지 수시로 해군기지 공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송씨는 공사장 정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공사 트럭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해군기지 공사장을 사람의 팔로 둘러싸는 ‘인간띠잇기’ 행사를 주도했다. 그리고 7월1일 구속되던 날 해상 감시 활동의 일환으로 공사구역 내의 바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감옥에까지 갇힐 중범죄인지 주민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강동균 강정마을 주민회장은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위축시키려고 붙잡아 넣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검찰이 제주지방법원에 낸 구속영장 청구서를 살펴봐도 그러한 의도는 엿보인다. 검찰은 그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이유로 “본 사건 관련하여 석방하게 되면 직접 공사현장에 나가 인간띠 시위를 주동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겨레>가 강정마을을 찾은 지난 10월20일 박인천씨는 여전히 해군기지 공사장 인근에서 텐트를 치고 머물고 있었다. 그는 송씨가 왜 직접 바다에 뛰어들어 해상 감시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고 싶어했다.

“우리가 해경에 불량 오탁수 방지막을 촬영해 달라고 아무리 신고를 해도 ‘해군기지 사업단에 연락해보겠다’는 말만 해요. 한번도 안 나와봐요. 처음(2월께)에는 저도 하루 열번씩 신고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서 지금은 공사 현장 영상만 찍고 있어요. 제주도청도 문제예요. 담당 부서에 전화를 해도 ‘규정대로 설치돼 있을 거다’는 말만 하고 문제 삼지를 않아요. 만약 경찰이나 감리단이 제대로 감시업무를 했다면 송 박사가 바다로 뛰어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송강호씨와 강정마을 해양감시단이 지난 몇달 동안 바다 위에서 맞닥뜨렸던 현실이 무엇인지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10월19일, 21일, 22일 강정 앞바다로 나가 해군기지 공사 환경 감시활동을 했다.

19일 오전 10시30분. 강정마을 멧부리 바위(해군기지 공사장 동쪽) 쪽 해안으로 카누 두 대를 들고 나갔다. 해양감시단 활동가 세 사람이 기자와 함께했다. 카누를 바다 위에 띄우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이 “어디 가냐”고 물어왔다. 조엔(30)이라고 불리는 여성 활동가는 “오탁수 방지막 확인하러 바다로 나가요. 우리는 분명 경찰에 미리 알리고 가는 겁니다. 문제 삼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감리단도 경찰도 도청도
모두 손을 놓고 있었어요
환경 지키는 게 시민 의무죠
오염물질 배출 상태를
확인하러 간 것뿐인데…”

평화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 건설된단 소식 듣고
송씨는 강정마을로 이사왔다
“제주에 평화를 심으려는 게
그의 생각이었어요”

작은 카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나뭇잎 같은 존재였다. 제주 바람은 거세다. 바람에 떠밀려 배는 곧 뒤집힐 듯 심하게 흔들렸다. 노를 저어 700m쯤 해상으로 나가자 멀리 해군기지 공사장 안의 구럼비 바위가 보였다. 육중한 수십개의 삼발이(TTP·파도완충제)들이 구럼비 바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트럭이 바다 아래로 큰 돌들을 쏟아붓고 있었다. 바닷물은 노란색을 띠어 탁했다. 해수면 아래로 오탁수 방지막을 달고 있는 주황색 튜브가 바다 위에 떠 있었다. 해군 기지 해역을 넓게 둘러싼 오탁수 방지막은 공사장 인근 바다로 오염물질 배출을 잘 막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해수면 아래로 몸을 숨긴 방지막의 ‘막체’(천막 재질과 비슷한 천)를 보면 사정이 달랐다.

막체는 곳곳이 찢어져 있었고 막체와 막체 사이 연결 부위가 부실해 오염물질들의 왕래가 자유로워 보였다. 또 해양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삼발이와 막체를 연결하는 쇠사슬이 제대로 설치돼 있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 많은 막체들이 강한 조류에 휩쓸려 이리저리 말려 있었다. 막체의 기능을 거의 못한 채 바다 위에 떠 있는 천에 불과했다.

해군기지 사업단이 애초 강정 주민에게 공개한 오탁수 방지막 설치 표본을 보면, 막체는 해수면 아래로 평평하게 펼쳐지도록 해양 바닥에 놓여 있는 삼발이와 쇠사슬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막체는 해수면 아래로 최소 2m 이상 펼쳐져 있어야 한다. 이렇게 제대로 설치되어야 부유사(오염물질)들이 강정 앞바다로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오탁수 방지막 설치는 강정마을 앞바다 곳곳에 퍼져 있는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지를 보호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해군기지 사업단에 요구한 조건이다. 연산호는 화려한 촉수를 가진 아름다운 해양생물인데 청정해역에서만 서식하고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해군이 오탁수 방지막 설치를 하지 않고 연산호가 괴사하면 문화재보호법 위반이 되어 공사가 중지될 수도 있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때문에 오탁수 방지막 감시에 열심이다. 강정 앞바다는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이다.

신고해도 귀찮아하는 경찰과 감리단

서귀포해양경찰서 당직실로 전화를 걸어 ‘오탁수 방지막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오염물질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는 것 같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사업단과 도청 관련 부서에 통보하겠다”고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군기지 사업단 쪽에서 오탁수 방지막의 상태를 개선하도록 하루의 시간을 준 뒤 21일 오전 강정 앞바다로 다시 카누를 타고 나갔다.

막체의 상태는 개선돼 있었다. 찢어져 있던 막체들 상당수가 새것으로 교체돼 있었다. 여러차례 해군기지 사업장을 감시해온 감시단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지켜봐왔는데 오늘 가장 상태가 좋다. 이달 말 민관합동점검반의 점검이 예정돼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탁수 방지막의 설치 방식은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막체를 평평하게 펴는 구실을 하는 쇠사슬은 여전히 막체에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감리단 감시선이 오탁수 방지막 설치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10여분 정도 휘익 둘러보더니 바로 돌아가버렸다. 해수면 아래로 잠수해 막체가 제대로 설치돼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튜브가 물 위에 제대로 떠 있는지만 확인했다. 감시단 활동가들은 잠수부가 해수면 밑을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삼십여분 뒤 배 옆면에 ‘웅진’이라고 쓰인 감시선이 다시 나타났다. 노를 저어 감시선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알려줄 게 있어요. 막체가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요.” 감시선 위의 직원들은 “우리한테 말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이어 “잠수부 투입해서 확인해보세요”라고 알렸다. 한 직원이 옆의 직원에게 “그냥 알았다고 해”라고 말하자 다른 직원이 “알았어요”라고 귀찮은 듯 대답했다.

서귀포해양경찰서 당직실로 전화를 걸어 이날의 오탁수 방지막 상태를 신고했다. 경찰은 “감리단 쪽이 오늘 아침 점검했는데 규정대로 잘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원이 들어왔으니 재점검하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22일 오전 10시 다시 강정 앞바다로 나갔다. 오탁수 방지막 막체에 걸려 있어야 할 쇠사슬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았다. 문화재청의 요구에 따라 사석 투하 시 반드시 활용해야 하는 폴파이프(fall pipe)를 제대로 쓰지 않고 공사 트럭이 바다에 돌을 마구 쏟아붓는 것 같은 현장도 목격했다. 공사구역 내로 근접 확인은 불가능해 육안으로 멀리서만 바라봤다.

10시15분 해양경찰에 출동을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서귀포해양경찰서 당직자는 “감리단에 통보는 하겠지만 우리가 출동할 일은 아니다”며 전화를 끊었다. 10시20분 다시 전화를 걸어 “문화재보호법 위반은 2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연산호 군락지 훼손은 문화재보호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을 감시하는 것은 경찰의 업무에 속한다”고 설명하자 이번에는 경찰이 “확인해본 뒤 다시 연락 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10시50분. 감리단 관계자가 기자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왔다. “해군기지 사업단에서 한겨레 기자가 통화를 원한다고 알려왔다. 당신이 기자가 맞느냐”고 물어왔다. 기자라고 밝히고 경찰에 신고한 적이 없는데 해군기지 사업단은 이미 기자의 취재활동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11시25분 임채욱 서귀포해양경찰서 형사계장이 보트를 타고 나타났다. “폴파이프를 규정대로 사용하지 않은 현장이 있다. 경찰에 촬영을 요청한다”고 요구하자 임채욱 계장은 “나중에 하겠다”며 거절했다. 임 계장은 “경찰이 해군기지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서 촬영을 하려면 미리 사업단 쪽에 통보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리 통보하면 오염물질 배출 현장이 은폐될 수 있다”고 지적하자 “다 감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은폐는 불가능하다”고 임 계장은 반박했다.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총 5명 구속, 주민 기소 200건, 벌금액수 3억원

해양감시단 활동가들은 매일 겪는 일이라며 답답해했다. 감시단 활동가 김동원(28)씨는 “경찰과 감리단, 제주도청 어떤 곳도 제대로 감시를 하지 않아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가 감시활동을 펴는데 그 대가는 경찰에 연행되거나 업무방해 벌금형이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송강호씨의 해상 감시 활동은 무죄라고 주장한다. 검찰이 주장한 송씨와 박도현 수사의 해군기지 사업단 업무방해 내용은 과장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공사업체 관계자들은 재판정에 출석해 송씨가 업무방해를 했다고 증언했다. 송씨가 7월1일 공사구역 내로 카누를 타고 들어와 준설선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오후 4시30분께부터 작업을 1시간 정도 중단했다는 내용이었다. 송씨는 공사 관련 어떤 장비도 훼손하지 않고 오염물질 방출 현장 사진만 찍고 돌아갔다.

또 관행적으로 준설선 인근 20~30m에 사람이 들어오면 작업을 중단하지만 송씨와 박 수사는 이날 100m 이상 떨어져 사진을 찍은 것도 확인됐다. 송씨의 활동으로 1시간가량 작업을 중단한 사석 투하 전문 바지선의 대여료는 시간당 120만원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이것이 사람을 수개월간 감옥에 가둘 만큼의 큰 죄인지 재판부의 전향적인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 송강호씨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제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그를 지난 21일 일반면회를 신청해 만났다. 송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업무방해를 하러 들어간 게 아니라 오염물질 배출 상태를 확인하러 간 겁니다. 공사구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오염물질 배출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찢어진 오탁수 방지막의 막체가) 해수면 아래에 있어서 감리단도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경찰과 제주도청도 손을 놓고 있습니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송씨와 박 수사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선고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제주지방법원은 심리를 계속하고 있다.

김영록 민주당 의원은 10월28일 해양경찰청 국정감사에서 “불법공사를 감시해야 할 해경이 환경 훼손 증거를 채증해달라는 주민 요구는 묵살하고 시민 활동가들을 구속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해경이 ‘윗선’의 지시로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벌이다 업무방해 등으로 제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사람은 송강호씨와 박도현 수사 외에 양윤모(57) 영화평론가, 김은혜(22), 강부언(73)씨 등 5명이다. 검찰이 강정마을 주민을 기소한 건수는 총 200여건, 강정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벌금 액수는 3억원에 이른다.

제주/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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