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
박종현 지음/김영사·9500원 바야흐로 새로운 유령이 나타나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부관참시한 케인스가 바로 화제의 주인공. 미국발 금융위기로 공황에 대한 공포감마저 감돌면서 ‘올드 보이’ 케인스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럴 만도 하다. 케인스가 없었더라면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쓰나미에 서구자본주의는 무릎 꿇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경제사상을 한 마디로 한다면, 자본가한테서 자본주의를 지키자는 것이었으니, 탐욕과 위선의 금융자본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린 마당에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터다. 그래서 서둘러 집어들어 ‘열독’한 책이 박종현 교수의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이다. 이 책이 적절한 시기에 출판되었다는 평을 들은 만한 것은, 지식인마을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온지라, 케인즈만 조명한 것이 아니라 짝패로 하이에크를 내세워 둘 사이의 차이점과 공통점, 그리고 논쟁점을 정리해주고 있어서다. 그런데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두 사람 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놓일 때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등판시기만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내린 처방전은 분명히 효과를 거두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가 떨어졌다. 먼저 등판한 사람은 케인스.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나자 두 가지의 변화구로 승부수를 던졌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인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부가 국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한 다음 이를 각종 공공투자에 사용해, 유효수요를 늘리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줄곧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완전 고용이 달성되기만 하면, 시장은 경제적 효율성과 선택의 자유 그리고 사람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최상의 자원배분 공간이 된다”고 믿었다. 케인스식 처방은 전후 30년에 걸친 서구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위기가 왔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케인스가 ‘강판’당하고 새로운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이는 하이에크. “케인즈가 자유방임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면, 하이에크는 자유시장 질서의 복원과 이를 보장하는 헌정 규칙의 수립을 통해 고전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복원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대처 ‘감독’이 하이에크를 선택하면서 비로소 신자유주의시대가 열렸다.
익히 알고 있듯,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 축소를 주장했다. 특별히 “금융시장 및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의 철폐가 강조”되었다. 금융시장 자유화는 이자율의 상한을 정부가 제한하지 못하게 했고,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을 가능케 했다. 지은이는 후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데,
“정부가 그동안 경제를 통제할 수 있었던 토대를 없앤다는 부수적 성과를 염두”에 둔 조처라서 그렇다. 오늘의 위기는 하이에크의 몰락을 뜻한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그래서 케인스인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나,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위기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이다. 그렇다면 뒤를 돌아볼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아야 한다. 전세계로 번지는 금융위기의 불길을 끌 소방수는 누구일까? 슬그머니 <자본>을 꺼내놓은 이유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박종현 지음/김영사·9500원 바야흐로 새로운 유령이 나타나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부관참시한 케인스가 바로 화제의 주인공. 미국발 금융위기로 공황에 대한 공포감마저 감돌면서 ‘올드 보이’ 케인스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럴 만도 하다. 케인스가 없었더라면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쓰나미에 서구자본주의는 무릎 꿇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경제사상을 한 마디로 한다면, 자본가한테서 자본주의를 지키자는 것이었으니, 탐욕과 위선의 금융자본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어버린 마당에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터다. 그래서 서둘러 집어들어 ‘열독’한 책이 박종현 교수의 <시장경제를 위한 진실게임>이다. 이 책이 적절한 시기에 출판되었다는 평을 들은 만한 것은, 지식인마을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나온지라, 케인즈만 조명한 것이 아니라 짝패로 하이에크를 내세워 둘 사이의 차이점과 공통점, 그리고 논쟁점을 정리해주고 있어서다. 그런데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두 사람 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놓일 때 ‘구원투수’ 역할을 맡았다. 등판시기만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내린 처방전은 분명히 효과를 거두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가 떨어졌다. 먼저 등판한 사람은 케인스.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나자 두 가지의 변화구로 승부수를 던졌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단기금리를 인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부가 국공채를 발행해 자금을 확보한 다음 이를 각종 공공투자에 사용해, 유효수요를 늘리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줄곧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완전 고용이 달성되기만 하면, 시장은 경제적 효율성과 선택의 자유 그리고 사람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최상의 자원배분 공간이 된다”고 믿었다. 케인스식 처방은 전후 30년에 걸친 서구자본주의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위기가 왔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케인스가 ‘강판’당하고 새로운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이는 하이에크. “케인즈가 자유방임주의로부터 자본주의를 구출하는 데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면, 하이에크는 자유시장 질서의 복원과 이를 보장하는 헌정 규칙의 수립을 통해 고전적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복원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대처 ‘감독’이 하이에크를 선택하면서 비로소 신자유주의시대가 열렸다.
익히 알고 있듯,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 축소를 주장했다. 특별히 “금융시장 및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의 철폐가 강조”되었다. 금융시장 자유화는 이자율의 상한을 정부가 제한하지 못하게 했고,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을 가능케 했다. 지은이는 후자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데,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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