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미국 중앙정보국(CIA) 웹사이트에 떠 있는 ‘월드팩트북’에 따르면 2005년 추정치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물가 등을 감안한 실질구매력지수(PPP)로 4조250억달러다. 공식환율로 본 같은 시기 추정치는 4조6640억달러로, 물가가 비싼 일본은 구매력지수 평가치가 오히려 낮다. 1인당 GDP(이하 PPP기준)는 3만1600달러.
같은 시기 한국 GDP는 1조1010억달러, 1인당 GDP는 2만2600달러다. 공식환율기준 한국 GDP는 8012억달러. 공식환율기준으로도 1조달러그룹 진입은 시간문제다. 한국의 연간 실질성장률이 4%대고 일본이 2%대인데다, 일본통화 엔의 상대적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비해 한국 원화는 강세기조이므로 적어도 한-일 양국간의 지표상 경제규모나 소득 격차는 앞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다. 한국 원화의 미국 달러 대비 가치상승률(절상률)이 2002년 이후 지난 5월까지 28%를 넘었다니, 한국 GDP증가의 상당부분이 이 환율하락(평가절상) 덕인 게 분명하다. 통화가치 상승에는 때로 심각한 시련도 뒤따르므로 마냥 즐거운 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중국처럼 국가가 환율을 강력히 통제하는 나라들을 뺀 주요국들의 환율변화는 향후 전망까지를 포함한 해당국의 총체적 경제역량을 대체로 반영한다. 환율하락이 수출을 어렵게 만드는 등 당장 경제에 부담을 지우지만 그것을 단순히 정책오류 탓으로만 매도하는 건 무리다. “완만한 인플레, 낮은 실업률, 무역흑자, 그리고 매우 고른 소득분배가 이 탄탄한 경제의 특기할 만한 점”이라고 CIA는 한국경제를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매우 고른’ 따위의 수식어에 분개할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전지구 차원의 상대평가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터무니없는 건 아니다.
환율변동에 따른 달러표시 한국 GDP 팽창효과는 앞으로 가속될 가능성이 짙다. 중간선거 패배로 ‘강한 달러’를 고집해온 집권 공화당의 통화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연간 1조달러대에 육박하는 심각한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강한 달러 정책으로 주로 동아시아의 막대한 잉여달러들을 끌어들임으로서 경제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고용확대·실업감소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공화당과의 차별성을 연출해내야 할 민주당은 국내산업 보호육성을 외칠 것이고, 상·하 양원 다수파를 점한 민주당의 그런 요구를 레임덕에 걸린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 무시하긴 어럽다. 결국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늘려 국내산업을 살리고 고용을 확대하려면 강한 달러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게다가 강한 달러를 뒷받침해온 기둥 가운데 하나인 강력한 군사력도 그다지 믿을 만한 게 못된다는 게 입증됐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기세를 올렸던 불과 몇년 전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라크연구그룹의 등장이 상징하듯 미국은 베트남전에 이어 이라크전에서도 사실상 패배했다. 10년에 걸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실패로도 검증됐듯 제아무리 초대국이라도 군사력만으로는 약한 개도국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분명해진 것이다. 미사일방어(MD)니 핵기술 및 재래무기 혁신, 동맹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유일초대국(팍스아메리카나) 신화를 재건하기 위해 압도적 군사력을 휘둘렀던 네오콘(신보수주의)식 패권 추구는 실패로 판명났다. 그것으로 ‘강한 달러’를 지탱할 순 없다.
미국이 달러 대비 평가절상을 요구할 주타겟 통화는 중국의 위안화이겠지만, 한국 원화의 평가절상 추세도 피하기 어렵다. 이런 흐름은 민주당으로의 미국 정권교체 무드가 짙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질 것이고, 한국도 통화정책 재검토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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