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
며느리 셋 가운데 항상 둘째가 튀었다. 따로 사는 시부모의 생활비 분담 문제가 나오자 둘째는 “역모기지 신청하시지 왜 그러시나”라며 발을 뺐다. 시어머니가 병석에 누웠다. 의견을 묻는 맏며느리에게 둘째는 “요즘 괜찮은 요양원 많던데요”라고 말을 잘랐다. 결국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가 병 수발을 하고 맏며느리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1년여 만에 시어머니가 숨을 거두고 시아버지의 건강은 더 나빠졌다. 둘째는 “아버님이 빨리 재혼하시는 게 최선이죠”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시아버지는 맏며느리 집으로 옮겼다. 둘째는 이후 명절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가면서 시아버지를 모시자는 말이 나올까봐서다. 이쯤 되면 ‘역모기지-요양원-재혼’ 주장으로 이어지는 ‘얄미운 며느리 3종 세트’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많은 며느리들의 마음이 그와 다르지 않을 법하다. 실제 많은 집안에서 이런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나 뚜렷한 해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성 75.7살, 여성 82.4살이다. 여기에서 질병으로 활동할 수 없는 기간을 뺀 건강수명은 남성 67.4살, 여성 69.6살로 떨어진다. 남성은 평균 8.3년, 여성은 12.8년 동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이런 노인이 65살 이상 인구의 절반 가량인 24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식을 평균 셋으로 쳐도 전체 가구 절반 정도가 얽혀 있다.
행복한 노년을 보내려면 네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 경제적 안정, 건강, 정서적 공명, 의미 추구가 그것이다. 가족들은 이 가운데 부담이 바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경제와 건강 문제에 가장 신경 쓴다.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의료보호를 기본 틀로 하는 사회적 해법이 완비되기 전에는 각자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정서적 공명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사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미리 준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의미 추구도 마찬가지다. 행복한 노년의 큰 부분은 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또 과거에 집착하거나 자식과의 관계에 매달리지 말고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나가라고 권한다.
〈창가의 침대〉(열음사 펴냄)는 간호요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심리소설이다. 핵심은 정신의 성숙과 진실한 인간관계다.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조건에 맞는 가치 있는 일은 어디에나 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정서 그 자체에 순수한 관심을 갖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더 잘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이들은 영혼이 빛난다.
이렇게 되려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함께 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 서로 만나면 즐겁고 따스한 관계가 되도록 연습해야 하는 것이다. “영혼에도 일종의 경제학이 적용됩니다.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것과 같은 식이지요.” 서로 부유해지는 관계를 만들었다면 해답은 이미 나온 셈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