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석유가격이 왜 미친 듯 치솟을까?
신흥 경제대국 중국과 인도의 고성장과 석유 수요 급증으로 공급이 달리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그들 나라 석유 수요가 꾸준히 는 것은 사실이지만 2004년 이후 유가가 급증한 건 그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2003년까지보다 수요증가율은 떨어졌다. 세계 석유재고량은 계속 늘었고 잘사는 나라들 석유 수요도 늘지 않았다.
몇 가지 상승 요인들 중 하나가 1999년 베네수엘라에 반미적인 우고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일. 확인가채매장량 기준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가는 베네수엘라는 원래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협정 등을 곧잘 무시하고 증산해 유가를 끌어내렸는데, 차베스는 이처럼 미국 말 잘 듣는 상류계급이 장악한 국영석유회사를 사실상 해체해버렸다. 2010년까지 하루 600만배럴로 증산하려던 계획도 물건너갔다. 또 하나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역시 2010년까지 하루 생산량을 600만~700만배럴로 늘려 국제유가를 대폭 낮추기로 계획했으나 알다시피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또 2004년 돌발한 석탄광산의 큰 사고들로 말미암은 중국의 석유 수요 급증인데, 투기꾼들을 자극하긴 했으나 일시적인 것이었으며, 다음해 중국 석유 수입은 다시 크게 줄었다.
더 구조적인 요인들이 있다. 먼저 미국 석유 정제설비 능력의 저하. 미국 석유업계는 최근 20년 이상 정보기술(IT)산업 등에 비해 낮은 수익률 때문에 설비투자를 기피해 왔다. 설비 능력 저하는 고유황 중질유 정제 기피로 이어지고 저유황 경질유인 서부텍사스산 석유(WTI) 구입을 촉진함으로써 세계 원유생산의 0.4%에 지나지 않는 서부텍사스산이 국제유가 결정 기준원유가 되게 만들었다. 미국 석유정제회사들이 이를 집중 구입하면서 가격이 뛰었고 80년대 중반 이후 국제유가 결정 주도권은 석유수출국기구에서 뉴욕 석유 선물시장으로 넘어갔다. 그때부터 투기자본이 몰려들면서 석유선물의 금융상품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구미 투자은행이 설정한 상품펀드에 연기금 등의 장기투자가 쏠렸고 실물경제와는 무관한 이런 투기자본이 유가 폭등에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세계화와 더불어 은행예금 등의 간접금융보다 증권·펀드 등의 직접금융이 급속히 확대되고 미국 쌍둥이 적자와 관련된 과잉유동성까지 겹쳐 산업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로 직행했다.
미국 석유메이저들 주주 구성은 1970년대까지는 각종 펀드나 금융기관 주주인 기관투자가들 지분이 37%였으나 2000년엔 73%로 급등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주가 상승과 단기 수익에만 신경 썼고, 그 결과 메이저 5대사의 연간 운용자금에서 차지하는 정제설비 갱신이나 새 유전탐사 투자비율은 90년대 중반 60%에서 2006년엔 40%로 떨어졌다. 대신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주주 손에 넘어간 비율이 같은 기간 30%에서 60%로 급증했다. ‘돈 놓고 돈 먹기’식 재테크 투자가 횡행하는 이 ‘펀드 민주주의’가 결국 누구를 살찌우고 누구 주머니를 터는가. 〈세카이〉 3월호 ‘카지노 자본주의’ 특집기사에서 일본 독립행정법인 석유천연가스 금속광물자원기구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시이 아키라가 짚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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