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여가〉). 나중에 조선 태종이 된 이방원이 ‘어차피 한 세상’ 한편이 돼 잘살아보자고 꾀자 정몽주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단심가〉) 백골이 흙이 되더라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답했다. 개성 선죽교에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때려 죽일 때 흐른 핏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한(조선)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보장하기 위하여 … 3개월 내에 …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조선)반도로부터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조선)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을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이렇게 돼 있다. 그 한 달 뒤인 그해 8월28일 유엔총회는 결의안 711호를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정치회의를 정전협정 체결 후 두 달 이내, 10월27일 이전까지 미국이 주선해 개최하도록 했다.
알다시피 이 합의와 약속은 50년이 훨씬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7일 서울 변호사회관 대회의실에서 평화·통일연구소(이사장 홍근수)와 한미관계연구회가 주관한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시안) 발표 및 토론회’가 열렸다. 강정구 평화·통일연구소 소장 등 12명이 기안하고, 강남훈 한신대 교수 등 29명이 제안한 분단 뒤 첫 한반도 평화협정 시안의 제2장(전쟁종료와 국제연합군사령부 해체 및 외국군 철수) 5조는 이렇다. “대한민국 영역에 주둔하는 모든 외국군대는 이 평화협정이 발효된 때부터 3년 내에 그 인원과 장비를 완전히 철수하며 외국군 기지도 모두 철거한다.”
홍근수 목사는 “6자 회담의 진전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전망이 열리면서 미국이 50여년 동안 회피해 왔던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한 준비와 논의가 관련 당사국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며 “북핵 불능화·신고 및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문제를 둘러싸고 6자 회담 진전이 지체되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 어느 쪽도 한반도 평화협정 정세를 근본적으로 뒤집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9·19 공동선언’과 이의 이행을 위한 ‘2·13 합의’, 미국 내의 정세변동 등으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흐름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됐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건대, 과연 그럴까 의심이 든다.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재검토 얘기가 나오더니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미사일방어(MD) 참여 얘기가 솔솔 새어나오고 마침내 통일부를 해체한단다. 미국이 만세 부를 일이다. 국내 정세 변동이 세상을 거꾸로 돌리는 걸까. 세상에는 60년 넘도록 제 땅을 장악한 외국군대를 복락의 원천으로 보는 사람과 재앙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 두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13~14세기, 20세기 몽골과 일본이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할 때도 그랬다. 고려 말의 기씨 일족이나 일제 말의 배절자들은 마지막까지 제국의 영생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을 ‘민족’으로 부르든 말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방원이 해체한 것은 (고려)왕조였지 민족은 아니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해체된들 어떠하리? sdhan@hani.co.kr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건대, 과연 그럴까 의심이 든다. 2012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재검토 얘기가 나오더니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미사일방어(MD) 참여 얘기가 솔솔 새어나오고 마침내 통일부를 해체한단다. 미국이 만세 부를 일이다. 국내 정세 변동이 세상을 거꾸로 돌리는 걸까. 세상에는 60년 넘도록 제 땅을 장악한 외국군대를 복락의 원천으로 보는 사람과 재앙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 두 부류의 인간들이 존재한다. 13~14세기, 20세기 몽골과 일본이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할 때도 그랬다. 고려 말의 기씨 일족이나 일제 말의 배절자들은 마지막까지 제국의 영생을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온 사람들을 ‘민족’으로 부르든 말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이방원이 해체한 것은 (고려)왕조였지 민족은 아니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해체된들 어떠하리?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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