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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혼란과 일상 사이…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등록 2010-01-21 08:48수정 2010-01-21 08:54

[아이티 지진참사] 권태호 특파원, 포르토프랭스를 가다
거리행상 등 최소한 시장기능 되살아나
구호품 전달 활기…치안은 여전히 불안




대지진 1주일, 폐허 속에서도 아이티에선 일상의 삶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9일 포르토프랭스의 중심가에는 거리 행상이 부쩍 늘었다. 공산품, 약, 옷, 생수, 간단한 간식거리 등을 팔고 있었다. 콜라병 박스를 내놓고 파는 상인도 있었고, 꽉 막힌 도로 위에는 식빵과 크래커 등을 운전자에게 팔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주택가 골목에도 둥그런 스테인리스 통에 조리된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최소한의 시장 기능과 경찰력이 복원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 닫았던 주유소들도 문을 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기름 사정이 원활치 않아 자동차와 휘발유통을 든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 않자, 기다리던 사람들은 화를 내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 동네 이발관들도 다시 문을 열어 사람들의 머리를 면도칼로 짧게 밀어줬다.

그동안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쌓아놓기만 하고 거의 나눠주지 않던 구호물자도 이날부터 조금씩 주민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이파오 부지 바로 옆에서 미 82공수사단 소속 공수부대가 생수(1ℓ)와 구호식량 4000개씩을 인근 시티솔레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처음 식량을 나눠줄 때만 해도 40여명 남짓이던 인원은 무서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불어나 1시간이 지난 뒤에는 수천명에 이르렀다. 맨발의 어린아이에서부터 옷을 잘 차려입은 귀부인풍 아주머니까지, 구호식량과 생수를 받아든 이들의 얼굴엔 오랜만에 웃음이 피어났다. 6살 소년 마클로 리바이슨은 “(지진 이후) 처음 받는 음식”이라며 “오늘은 기쁜 날”이라고 말했다. 그가 받아든 구호식량엔 에너지바, 비스킷, 초콜릿, 코코아 분말, 스튜 등이 들어 있었다. 적십자 등 구호단체들이 위치한 인근 소나피 공단 등 포르토프랭스 시내 곳곳에서 이날부터 구호식량 전달이 진행됐다.

그러나 외국인이 포르토프랭스 시내를 자유로이 활보한다는 건 아직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날 기자가 탄 낡은 지프차량이 잠시 정차해 트렁크를 여는 틈을 타 가방을 가져가려는 사람도 있었고, 아침에는 한국국제협력단과 미 공수부대가 있는 이파오 부지 입구에 1000여명의 주민들이 일자리를 달라며 몰려왔다. 대부분 남자들인 이들은 사탕수수 나무를 자르는 긴 칼을 지니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미군이 있는 곳에는 현지인을 일꾼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티에 사는 한 한국인 교포는 “아이티 사람들은 다혈질인 편”이라며 “ 원래 순박한 사람들이지만 먹을 걸 구하는 게 힘들어지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곤 하나, 외국으로부터 구호물자가 계속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티인들을 통제하는 게 쉽지 않아 긴장감 또한 팽팽한 것이다. “앞으로 구호물자가 매일 전해지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날도 포르토프랭스를 떠나 지방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계속됐다.

포르토프랭스/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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