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논술 단골 주제 뜯어보기/⑤ 제6영역 : 문화와 예술-4. 논술 쓰고 첨삭하기
박용성 교사의 실전강좌
[서론] 과거 서구의 젊은이들이 비틀즈에게 열광했던 것처럼 요즈음 일본의 중년 여성 사이에서도 ‘욘사마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연예인에 대한 동경을 넘어 사회적인 문화 콘텐츠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욘사마 현상’이 단지 문화산업가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어 이에 대한 올바른 고찰이 필요하다.
[본론1] 제시문 (나)에서는 대중매체의 상징물이 분명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은 문화 제작자들과 문화 소비자들이 대중의 가치와 생각을 내포한 신화를 함께 창조하였기 때문으로 본다. 이는 대중문화가 마치 주인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 심리적, 감정적으로 조작되는 것이 아님을 함의한다.
[본론2]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은 대중문화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순응과 경제적 이익 창출을 위해 대중을 세뇌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획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 식민지배 시절이나 군사독재 시절처럼 국가가 단일 매체를 통해 정보를 철저히 독점하던 시절에나 가능한 논리이다. 정보화시대의 도래로 인해 대중의 의식이 높아지고 정보의 무한 공유와 쌍방향 참여가 가능한 오늘날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대중의 정보에 대한 주체적인 수용 능력과 판단력 그리고 비판적 사고 능력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증가하였기 때문에 대중문화 역시 대중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결국 쇠락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종종 엄청난 자본을 들여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나 뮤지컬이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해 흥행에 실패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결국 대중이 원하는 문화 코드와 제작사의 기획 의도가 절묘하게 일치되어야 하나의 ‘문화적 신화’로 남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본론3]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제시문 (가)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문화는 제작사들의 의도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과 대중의 심리적 요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세계대전 이후 기성세대에 대한 신세대들의 불만과 자유를 향한 열망이 무한 자유와 기존 질서의 탈피를 추구하는 락의 정신과 일치하여 엘비스 프레슬리가 신화적 존재로 떠오르게 되었다. 따라서 제시문 (다)에서 언급하고 있는 ‘욘사마 현상’ 역시 철저하게 의도된 제작사의 기획에 따라 대중이 현혹된 것이 아니라 불안한 시대 정국 속에서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싶은 대중의 욕망과 기획 의도가 일치하여 이루어 낸 하나의 ‘문화적 신기원’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배용준이 ‘욘사마’로 ⓑ불리우며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성적으로 무뚝뚝하고 단편적 명령에만 익숙한 일본 남성들과는 달리 상냥하고 온화한 배용준의 성품은 냉대와 무관심에 지친 일본 여성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결론] 오늘날의 대중 문화는 과거와 같이 문화 기획자들의 상업적 논리에 의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대중이 대중매체의 획기적 발전과 정보사회화의 도래로 의식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욘사마 현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중문화는 시대적 상황과 대중 심리 그리고 기획 의도, 이에 더해 배우의 인간적인 면모가 어우러져 파생되는 복합적 산물인 것이다. ‘욘사마 현상’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첨삭 지도] (1) 단어와 문장 바로잡기 ⓐ ‘밖에’가 ‘뿐’이라는 뜻을 나타낼 적(반드시 그 뒤에 부정이 옴)에는 조사이므로 붙여 쓰지(이것밖에 없다.). 그런데 ‘안[內]’과 상대적 의미인 ‘바깥[外]’의 뜻을 나타내는 명사 ‘밖’에 조사 ‘에’가 이어질 적에는 띄어 써야 해(이것 밖에도 또 있다. 저녁 식사를 밖에서 했다.). 이 문장의 ‘걸을 수 밖에’에서 ‘걸을’은 동사, ‘수’는 의존 명사, ‘밖에’는 조사이므로 ‘걸을’과 ‘수’는 띄어 쓰고, ‘수’와 ‘밖에’는 붙여 써야지. ☞ 걸을 수밖에 ⓑ 우리말에서 타동사의 피동화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우선 ‘타동사 어간+-이-, -히-, -리-, -기-’의 방법이 있어. ‘바꾸다→바뀌다’, ‘부르다→불리다’, ‘쓰다→쓰이다’ 등이 그 예야. 그런데 타동사 중에는 이와 같은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이 있어. 예를 들어 ‘주다→주어지다, 만들다→만들어지다’와 같이 ‘타동사+-아/-어지다’로 만들어지는 피동사도 있지. 이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마련된 바는 없으나 우리말 피동화는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 방법 중에 어느 한 가지를 따르게 되지. 그런데 ‘바꾸다, 부르다, 쓰다’ 등을 ‘바뀌어지다’, ‘불리워지다’, ‘쓰여지다’로 바꾸는 것은 접미사에 의한 피동과 ‘지다’에 의한 피동이 겹쳐진 것으로 흔히 이중 피동이라 해. 이는 피동 표현이 중복되는 느낌이 있으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아. 그리고 ‘불리우다’는 말도 잘못된 피동이므로 쓰지 않아야 해. ☞ 불리며 (2) 글의 흐름 바로잡기 [서론의 흐름] 이 글의 서론은 참으로 가지런해. 우선 첫 문장에서 욘사마 현상을 요약한 다음, 둘째 문장에서 그 현상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규정하고, 셋째 문장에서 욘사마 현상에 대한 비난을 언급하면서 올바른 고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어. [본론의 흐름] 본론은 네 문단으로 되어 있어. 우선 본론1에서는 제시문 (나)를 분석하면서 대중 매체가 만들어 내는 ‘문화적 신화’는 문화 제작자들과 문화 소비자들이 함께 창조한 것이지 결코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 조작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 그러면서 본론2에서 몇 가지 논거를 들면서 앞의 논리를 변호하고 있어. 그리고 본론3에서는 제시문 (가)의 전반부 주장을 비판하면서 ‘욘사마 현상’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지. 그러나 이 글도 (나)에 대해 잘못 분석하고 있어. (나)는 대중문화 현상에 나타난 신화를 분석하면서, 이 신화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다시 말해 매스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적 상징 기호가 사회 문화적 맥락을 통해 2차적 의미를 부여받을 때 문화적 신화가 만들어지는데, 문화 생산자들은 이러한 신화를 이용하여 문화 소비자들의 사고와 행동을 조작하여 문화 상품을 소비하게 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다는 거야. 물론 “제작자, 광고주, 언론인 그리고 문화 소비자들까지도 신화를 창조”한다는 언급이 있지만 그것이 중심 내용은 아니야. 글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지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 안 돼. [결론의 흐름] 이 글의 결론은 본론의 내용을 추려서 요약하고, 서론의 논제 제시와 관련을 지어 주제를 강조하며 논의를 끝맺고 있어. 나무랄 데가 없지.
(3) 총평
(나)는 하나의 문화 현상을 텍스트로 놓고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을 제시한 글이야. 대중문화 현상에 나타난 신화를 분석하고 이것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욘사마 현상에 접근하는 도구로 이용해야지. 그런데 이 글은 이 점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이 점만을 제외하고 이 글은 아주 빼어나. 비문도 거의 없고, 논의를 이끌어 나가는 전개 능력도 아주 뛰어나지. 부족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상, 중상, 중, 중하, 하)이야.
박용성/여수여고 교사·<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첨삭 지도] (1) 단어와 문장 바로잡기 ⓐ ‘밖에’가 ‘뿐’이라는 뜻을 나타낼 적(반드시 그 뒤에 부정이 옴)에는 조사이므로 붙여 쓰지(이것밖에 없다.). 그런데 ‘안[內]’과 상대적 의미인 ‘바깥[外]’의 뜻을 나타내는 명사 ‘밖’에 조사 ‘에’가 이어질 적에는 띄어 써야 해(이것 밖에도 또 있다. 저녁 식사를 밖에서 했다.). 이 문장의 ‘걸을 수 밖에’에서 ‘걸을’은 동사, ‘수’는 의존 명사, ‘밖에’는 조사이므로 ‘걸을’과 ‘수’는 띄어 쓰고, ‘수’와 ‘밖에’는 붙여 써야지. ☞ 걸을 수밖에 ⓑ 우리말에서 타동사의 피동화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우선 ‘타동사 어간+-이-, -히-, -리-, -기-’의 방법이 있어. ‘바꾸다→바뀌다’, ‘부르다→불리다’, ‘쓰다→쓰이다’ 등이 그 예야. 그런데 타동사 중에는 이와 같은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이 있어. 예를 들어 ‘주다→주어지다, 만들다→만들어지다’와 같이 ‘타동사+-아/-어지다’로 만들어지는 피동사도 있지. 이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마련된 바는 없으나 우리말 피동화는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 방법 중에 어느 한 가지를 따르게 되지. 그런데 ‘바꾸다, 부르다, 쓰다’ 등을 ‘바뀌어지다’, ‘불리워지다’, ‘쓰여지다’로 바꾸는 것은 접미사에 의한 피동과 ‘지다’에 의한 피동이 겹쳐진 것으로 흔히 이중 피동이라 해. 이는 피동 표현이 중복되는 느낌이 있으므로 쓰지 않는 것이 좋아. 그리고 ‘불리우다’는 말도 잘못된 피동이므로 쓰지 않아야 해. ☞ 불리며 (2) 글의 흐름 바로잡기 [서론의 흐름] 이 글의 서론은 참으로 가지런해. 우선 첫 문장에서 욘사마 현상을 요약한 다음, 둘째 문장에서 그 현상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규정하고, 셋째 문장에서 욘사마 현상에 대한 비난을 언급하면서 올바른 고찰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어. [본론의 흐름] 본론은 네 문단으로 되어 있어. 우선 본론1에서는 제시문 (나)를 분석하면서 대중 매체가 만들어 내는 ‘문화적 신화’는 문화 제작자들과 문화 소비자들이 함께 창조한 것이지 결코 상업적인 논리에 의해 조작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 그러면서 본론2에서 몇 가지 논거를 들면서 앞의 논리를 변호하고 있어. 그리고 본론3에서는 제시문 (가)의 전반부 주장을 비판하면서 ‘욘사마 현상’을 같은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지. 그러나 이 글도 (나)에 대해 잘못 분석하고 있어. (나)는 대중문화 현상에 나타난 신화를 분석하면서, 이 신화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다시 말해 매스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적 상징 기호가 사회 문화적 맥락을 통해 2차적 의미를 부여받을 때 문화적 신화가 만들어지는데, 문화 생산자들은 이러한 신화를 이용하여 문화 소비자들의 사고와 행동을 조작하여 문화 상품을 소비하게 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다는 거야. 물론 “제작자, 광고주, 언론인 그리고 문화 소비자들까지도 신화를 창조”한다는 언급이 있지만 그것이 중심 내용은 아니야. 글은 있는 그대로 읽어야지 읽고 싶은 대로 읽으면 안 돼. [결론의 흐름] 이 글의 결론은 본론의 내용을 추려서 요약하고, 서론의 논제 제시와 관련을 지어 주제를 강조하며 논의를 끝맺고 있어. 나무랄 데가 없지.
박용성/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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