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자율성’과 ‘다양성’.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의 핵심 낱말이다. ‘자율’은 ‘통제’의 반대일 터이니 그 대표 정책으로 대학과 자사고가 학생선발권을 행사하도록 한 것을 들 수 있겠고, ‘다양’은 ‘획일’의 반대일 터이니 자립형사립고 100개 등의 고교 다양화 정책이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정책은 자율과 다양성을 강조하므로 얼핏 보기에 자유주의 철학에 기초한 발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고전적인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저작 속에서 자율이나 다양성을 담보하는 주체는 늘 ‘개인’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옹호하는 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즉 학교)의 자율과 다양성이다. 특히 교육의 가장 중요한 참여주체인 ‘교사’와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정책은 찾기 힘들고, ‘학교’(특히 사학재단)의 자율성과 다양성만이 옹호된다. 이것을 자유주의적 정책으로 착각하는 것은 자유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교사와 학생 개개인의 자율과 다양성을 억압하고 교육을 획일화하는 주범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입시경쟁’과 ‘관료주의’다. 그중 ‘입시경쟁’을 완화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프랑스ㆍ스웨덴ㆍ독일처럼 대학을 평준화해 일정 자격을 갖춘 지원자는 모두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해주든가, 아니면 미국ㆍ영국처럼 학생선발 기준을 다양화해 ‘성적으로 줄세우기’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관료주의’는 어떤가. 획일화된 학제와 교육과정을 유연화해 학생이 다양한 과목과 교육프로그램을 고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통합해 무학년제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해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새 정부의 정책은 전반적으로 이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특목고ㆍ자사고를 늘려 중학생들을 성적 위주의 입시경쟁으로 내몰고 있고, 고질적인 야간‘타율’학습이 강화되고 중학생에게까지 0교시를 강요하는 현실을 나몰라라 하고 있다. 이것은 자율과 다양성이라는 덕목을 엄밀하게 ‘개인’의 수준에 적용하는 게 아니라 ‘학교’의 수준에 묶어놓는 ‘허위 자유주의적’ 발상 때문이다.
자유주의 전통이 뿌리박힌 서구 여러 나라가 예외 없이 고교 평준화 정책(무시험 학교배정)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고교 평준화라는 제도적 틀이 없다면 교사와 학생 개개인의 자율과 다양성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흔히 ‘경쟁의 천국’이라고 오해받는 미국에서도 의무교육인 고등학교까지는 경쟁이 철저히 제어된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사립학교는 학생 수 대비 10%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 종교계 학교를 뺀 이른바 ‘명문 사학’은 1.5%에 불과하다.
우리가 경계할 것은 교육의 ‘획일화’라는 의미에서의 평준화이지, ‘무시험 학교배정’이라는 의미에서의 평준화가 아니다. 이를 오해할 정도로 자유주의에 무지한 이명박 정부는 ‘성적순으로 뽑는 고등학교가 많아지면 학생의 학교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억지를 펴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를 더욱 닦달하는 이런 정책으로는 지식기반 경제에 걸맞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키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사교육비와 학벌주의 등 우리나라 특유의 병폐가 더욱 심해질 뿐이다. 이범 곰TV·EBS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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