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이범의 거꾸로 공부법 /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 ‘강남에 사는 서울대·연고대 출신, 토익 성적만 높은 지원자, 지나치게 자격증이 많은 지원자를 주의하라’는 지침이 내려지고 있다. 어떤 기업에서 이런 희한한 지침이 나온 것일까? 놀랍게도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에서 신입사원 선발하는 일을 하는 인사 담당자가 나에게 직접 해준 이야기다. 한마디로 예전처럼 ‘객관식 점수벌레들’을 뽑는 방식으로는 이제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나 선호하는 대기업 정규직을 뽑는다고 해 보자.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대체로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다. 순위가 뒤처져 있을 때에는 1등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그런데 글로벌 경쟁의 최첨단 영역으로 가서 1등이나 2,3등 정도 하는 상황이 되면, ‘도대체 어디가 앞이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제부터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는 무의미해진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식 점수벌레들은 늘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에 대해 정답 빨리 찾기’는 잘해 왔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상황에는 취약한 경우가 많다.(오해를 살까봐 명시하는데,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상당수가 그러하다) 게다가 지나치게 개인적인 점수 관리에 치중해 온 사람들은 조직 적응능력이나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직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이다.
기업은 이제 확연하게 ‘창조적 적응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원한다. 낯선 상황에 빨리 적응하고 상황을 파악해 창조적 방안을 만들어내는 인재. 그런데 여태까지 대학은 그런 인재를 배출하는 데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학의 서열은 궁극적으로 사법시험 합격자 수로 결정됐고, 그 사법시험은 객관식 점수벌레들에게 유리한 경쟁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수능 성적이 높은 학생이 사법시험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법학전문대학원이 신설되면서 사법시험이 몇 해 안에 폐지된다. 이미 유동화되기 시작한 대학 서열은 앞으로 훨씬 더 유동적이 되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취업률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도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수능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전형의 정원이 줄고 논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수시전형의 정원이 많아지는 것(올해 이미 56%이고 앞으로 더 높아질 전망이다), 대학들이 앞다퉈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해 성적순 선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데에는 다 이런 배경이 작용하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 굴지의 명문 사립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신들의 고민이 정확히 거기에 있다’고 인정한다.
주입식 교육은 선진국을 따라가야 하는 처지였을 때는 일정한 효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경제는 전인미답의 지대를 탐색해야 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고용시장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고, 이에 연동해 대입 선발의 트렌드도 변화한다. 이제 초·중·고교의 교육이 창의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돼야 할 때이다. 이범 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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