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왕 삼성그룹 법무실장
삼성 “김 변호사 문제 미흡한 대응에 자진 사퇴”
검찰 “본인도 조사대상…자리지키며 책임져야”
“입사 전 문제에 ‘거짓폭로’ 단정은 무리” 지적도
검찰 “본인도 조사대상…자리지키며 책임져야”
“입사 전 문제에 ‘거짓폭로’ 단정은 무리” 지적도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를 앞두고 이종왕(58·사시 17회) 삼성그룹 법무실장(상임고문·사장급)이 전격 사퇴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이 실장이 지난 9일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사 등록을 취소한 뒤 이학수 부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법무실장 사직서를 회사에 제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실장은 이에 앞서 그룹 전략기획실 임직원들에게 보낸 전자우편에서 “(삼성 비자금 조성 의혹을 제기한)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은 거짓이다. 김 변호사의 전 부인이 지난 8~9월 협박성 편지를 회사에 보내 왔을 때 타협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 결과적으로 제가 잘못 판단했고 그로 인해 회사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삼성 법무실의 이수형 상무보는 “김 변호사의 전 부인이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협박성 편지를 보내왔지만, 이 고문이 대응하지 말자는 입장을 고수해 결국 사건이 확대된 데 책임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이 지난 5일 일부 내용을 공개한 문제의 편지에는 금품을 요구하는 표현은 들어 있지 않다. 김 변호사를 흠집내려는 삼성 쪽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과 삼성 일부에서는 이 실장의 사퇴를 두고 다른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간부는 “삼성이 총수 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법무실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것 같다”며 “김 변호사와 이 실장의 도덕성 차이를 부각시켜 부정적인 여론을 만회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는 “김 변호사의 행태가 어쨌든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은 검찰 수사로 밝혀질 문제”라며 “이 실장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리를 지키면서 본인이 밝혀야 할 부분은 밝히는 게 오히려 책임지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한 계열사 마케팅담당 임원도 “(이 실장의 결정이) 이해되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자신이 있다면 사퇴할 게 아니라 성과로 보여주면 될 일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사실상 문책을 당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이 법무실 주도로 지난 5일 김 변호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수형 상무는 “공식 해명자료는 법무실과 재무팀이 함께 만들었고, 이 실장은 최종적으로 검토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이 김 변호사의 의혹 제기를 싸잡아 ‘거짓 폭로’로 단정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실장은 전자우편에서 “김 변호사가 사실을 교묘히 조작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인 것처럼 믿게 하고 있다”며 “김 변호사의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4년 7월 삼성에 입사한 이 실장이 자신이 없을 때 김 변호사가 직접 보고 듣고 실행했다고 주장하는 일을 거짓으로 단정한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실제 삼성도 김 변호사 이건희 회장의 로비 지시의 근거로 공개한 ‘회장 지시 사항’ 문건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삼성의 비자금과 로비 의혹은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내용”이라며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검찰 출신인 이 실장이 미리 사건을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고제규 김회승 기자 unj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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