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얻어먹은 잡탕라면의 힘으로 등산을 마쳤다. 한겨레자료사진
[매거진 esc]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8년 정도 된 듯싶다. 난생처음 지리산을 올랐다. 당시 난 하루하루가 꼬여 있었고 일상 자체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등산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기왕 하는 거 ‘빡세게’ 하자며 지리산을 택했다. 나 홀로 산행이었다. 그런 만큼 각오도 대단했다. 자연과 하나가 되겠다고 일부러 천왕봉 밑에서 텐트도 없이 잠을 잤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식사였다. 준비가 안 된 산행의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짐을 가볍게 하자는 의미에서 일부러 초콜릿과 과자만 싸 가지고 간 것이다. 버너 같은 취사도구는 아예 생각지도 않았었다. 지리산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었다. 누구는 당일치기 산행에도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난다는데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오르면서 초콜릿과 과자부스러기가 전부였다면 그거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그나마 먹던 초콜릿은 다 떨어지고 배낭 속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었다. 배가 고프니 기운도 없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자주 넘어졌다. 삼일 동안 산행을 한데다 여러 차례 넘어졌더니 옷은 진흙투성이였다. 갈아입을 옷이 있기 만무했다. 영락없는 지리산의 노숙자였다. 한 세 끼 정도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더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인적도 끊겼다. 다행히 여름 때라 산딸기들을 몇 개 따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발의 피였다. 멀리서 “웅~” 하고 반달곰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던데 무섭지도 않았다. 아니 반달곰 먹이라도 빼앗아 먹고 싶었다. 그것도 안 되면 반달곰이라도 잡아먹고 싶었다.
겨우 발걸음을 이끌어 세석산장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배는 너무 고프고, 돈은 한푼도 없고. 초췌한 모습으로 산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한 번씩 다 쳐다보는 것 같았다. 마치 조난자 취급하듯 그런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대했다. 벤치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냄새가 났다.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이 세상에서 저렇게 맛있는 음식 냄새가 있을 수 있을까? 눈을 감은 채로 음식에 관한 속담들을 떠올렸다. ‘금강산도 식후경’, ‘시장이 반찬이다’.
“야! 이거 별미네. 라면에 참치, 북어까지 넣었네!” “역시 산에서는 잡탕라면이 최고야” 직장인들로 보이는 남자 네 명이서 버너에다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일부러 그쪽으로 다가앉았다. 남자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국물을 들이켰다. 내 모든 것은 그 잡탕라면이 담긴 코펠 그릇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내게 고문수사관이었다. “잘 먹었다. 근데 이거 많이 남았네.” “이거 여기다 버리면 자연훼손 아니야?”
“저 그거 남은 거 좀 주세요!” 3일 굶으면 남의 집 담벼락 넘는다는데, 난 3일은 아니지만 세 끼를 굶주린 상태였으니 그냥 들이댔다. 그분들은 순간 내게 고문수사관에서 천사로 다가왔다. 정신없이 먹었다. 남김없이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잡탕라면’은 처음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라면 세 개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내게는 양이 부족했다. 배고픈 누렁이 개 밥그릇 닥닥 긁듯이, 나도 혓바닥으로 단 한 방울의 국물조차도 핥아 먹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안쓰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측은한 눈빛이 부담이 되긴 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허기를 달랠 수 있는데.
그날 이후로 난 ‘철저한 산행’을 고집한다. 특히 음식물에 각별히 신경 쓴다. 그날 이후의 산행에서는 꼭 라면을 먹었다. 취사가 여의치 않으면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 사발면을 먹었다. 그렇게 먹어도 맛있었다. 산중에서 먹는 라면 맛 때문에 일부러 산행에 나선 적도 있었다. 지리산에서의 잡탕라면이 내 등산 생활에 큰 획을 그어준 셈이다. 그날의 맛을 언제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을까? 계속 등산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느낄 수 있으려나?
곽동운/ 서울시 구로구 구로2동

〈농심과 함께 하는 라면 공모전〉 ‘삶은 라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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