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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민주의 완결판 ‘한-미 FTA’

등록 2007-04-19 17:47수정 2007-04-19 18:37

한승동의 동서횡단 /

일본 근대의 지적 기수였던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은 결국 어디를 향했던가. ‘학문의 권장’과 분리할 수 없는 그의 ‘탈아입구’론은 결국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침략주의로 귀결됐다.(<일본이라는 나라> 오구마 에이지. 책과함께) 당연한 일이었다.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던 그가 그토록 학문을 권장한 것은 학문, 곧 지식을 신분상승의 강력하고도 유일한 무기로 인식한 개인적 동기와 함께 결국 근대지식의 체현자였던 서양(유럽)을 신속하고도 철저하게 모방함으로써 근대의 지진아 일본을 단번에 기린아로 바꾸겠다는 욕망과 결합돼 있었다.(<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 이산) 후쿠자와에게 학문(서양지식)은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적 인식지평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후쿠자와는 통째로는 아니지만 서양을 긍정했고, 전적인 서양 수용만이 자신과 일본의 살 길이라고 믿었다. 그가 수용한 서양 근대가 곧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침탈과 등치되는 시대였기에 그의 서양모방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 정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부국강병을 지향한 그의 ‘학문의 권장’은, 서양 근대에 대한 저항이나 대적, 극복과는 애초부터 길을 달리했으며, 진정한 자아나 주체 확립과도 인연이 없었다. 철저한 서양 굴종과 숭배와 수용이 아시아에 대한 굴종과 숭배, 일방적 수용 강요로 이어진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의 후쿠자와 후예들은 서양 숭배자의 숭배자였다는 점에서 2중으로 굴절된 식민지 군상이었다. 그래도 흉내나마 낼 수 있었던 소수 ‘엘리트’들은 정신은 썩었겠지만 물질적으론 풍요했는지 모른다. ‘내부 식민지’적 2중의 착취대상이 된 대다수 조선사람들에게 삶은 굴욕이었다. ‘신’식민주의론을 설파하는 니시카와 나가오가 인용한 요한 갈퉁의 ‘제국주의 구조론’은 제국주의를 중심국과 주변국 관계로 정의하고 이렇게 정리한다. △중심국의 중심부와 주변국의 중심부는 이익조화적 관계에 있지만, △중심국의 내부보다는 주변국의 내부에 더욱 큰 이익부조화가 존재하며, △중심국의 주변부와 주변국의 주변부 사이에도 이익부조화가 존재한다.(<비평> 14. 2007년 봄) 종주국이든 식민지든 엘리트들끼리는 잘 먹고 잘 살며, 종주국 내부보다는 식민지 내부, 즉 종주국 백성들보다는 식민지 백성들 사이의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심하며 그로 인한 고통도 더 크다. 그리고 종주국 서민과 식민지 서민이 서로 통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며 서민들 차원에서도 종주국과 식민지는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얘기다.

동족에게 2중의 착취자로 군림했던 식민지시대 조선 엘리트들은 ‘해방’됐다는 세상에서도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폭력적인 엘리트로 군림했다. 그것은 ‘해방’이 실은 또 다른 식민지로의 전환에 불과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일제 때 도쿄와 도쿄제국대와 일본육사와 경성제국대로 향하던 후쿠자와의 후예들이 지금 워싱턴과 아이비리그와 서울대로 향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요 왜곡일까? 이 광적인 교육·영어열풍, 각기 10억이 훨씬 넘는 인구의 중국과 인도, 1억2500만의 일본보다 훨씬 많은 한국 대미 유학생수가 무엇을 의미할까. 계급차별을 전제한, 오로지 엘리트 고지를 향한 이 기괴한 중심부로의 끝없는 행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역’의 영역을 넘어선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야말로 니시카와가 말한 ‘신’식민주의의 완결판일지도 모른다. 체결되면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소수 엘리트 계급을 뺀 대다수에겐 배신으로 귀결될 것임을 갈퉁은 예고했다. 그가 옳다는 건 우리의 지난 1세기 역사가 체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심부를 향한 저항없는 투항은 주체이기를 포기한 식민지적 군상의 표징일 뿐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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