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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북 ‘납치고백’ 뒤통수 친 일본 우익

등록 2007-03-29 16:07

한승동의 동서횡단 / 군위안부와 일본인 납치④

2002년 9월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전격적인 평양 방문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과거청산과 경제협력 국교정상화 등 북-일관계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평양선언’이 발표됐다. 한반도 냉전의 해체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압권은 김 위원장의 일본인 납치 사실 ‘고백’과 구두사죄. 그는 납치를 “1970년대, 80년대 초까지 특수기관의 일부가 (저지른) 맹동주의 영웅주의” 탓으로 돌리고 “책임있는 사람들은 처벌”했다며, “이제부터는 절대로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후 북한은 피랍 당사자 5명과 그 가족 등 모두 10명을 일본으로 보내주었다. 북한은 자신들이 공식인정한 13명의 피랍인중 5명을 그렇게 보냈고 요코다 메구미를 포함한 나머지 8명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이 고백이 얼마나 중대한 패착이었는지 곧 깨달았다. 일본은 마치 기다렸다는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북한에 일단 되돌려보내기로 한 5명의 피랍인 일시귀향자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약속을 깬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요구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피해자중 한 명인 요코다 메구미가 죽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나머지 생존자들도 더 찾아내 돌려 보내라고 요구했다. 메구미가 숨졌음을 입증하는 증거자료로 보낸 그의 유골은, 선의로 받아들였다면 국교정상화를 위한 정치적 호의가 될 수도 있었으나 일본은 아직까지 의혹투성이로 남은 유골 DNA 검사라는 가장 비정치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마치 어떻게 하면 평양선언을 무효화하느냐에 골몰하듯이. 김 위원장의 고백은 북-일관계의 획기적 개선은커녕 일본 우익들의 대북 총공세 신호탄이 돼버렸고 ‘평양선언’은 그 순간 사문화됐다. 공영, 민영을 불문하고 모든 방송들이 매일 북한 때리기에 골몰했으며, 와다 하루키 교수도 지적했듯이 <엔에치케이(NHK)>와 <텔레비 아사히>가 거기에 앞장섰다.

일본은 지금 피랍인이 모두 17명이라 주장하면서, 납치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국교를 정상화할 수 없으며, 국교정상화가 안되면 과거청산도 경제협력도 있을 수 없다고 공세를 취하고 있다. 6자회담 북-일 실무회의 일본쪽 대표인 하라구치 고이치가 그랬고 아베 총리, 아소 외상, 시오자키 관방장관도 꼭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7~8일 이틀간 열린 하노이 회의에서 일본쪽은 공언한대로 △납치문제 재조사, △납치피해자와 그 가족의 안전확보와 조기 귀국, △진상규명, △ 납치실행범 인도를 요구했다. 납치피해자 중 더 이상의 생존자는 없다는 북한 발표는 거짓말로 치부됐다. 북쪽 대표 송일호의 말로는 “일본 대표단은 납치문제만을 부각”시켰다.” “일본쪽은 ‘죽은 사람을 되살려 돌려보내지 않으면 납치문제는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조선인 강제연행 840만, 군위안부 20만 동원에 대한 배상 요구로 응수했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평양에 간 일본총리 앞에서 납치행각을 시인하고 사죄에 재발방지 약속까지 한 뒤 생존자들을 돌려보내기까지 했다면, 설사 아직 완결된 게 아니고 험난한 여정을 남겨두었다 할지라도 사실상 문제해결은 예정됐던 것 아닌가. 문제가 남았다면 국교교섭 과정에서, 그리고 국교수립 이후 풀어가는 게 더 효과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가. 납치 피해자나 그 가족들의 고통도 더 빨리 줄이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중심에 아베 신조가 있었고, 이런 역풍 뒤에 미국이 있었다. 고이즈미가 평양에 간 약 보름 뒤 부시 정권은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비롯한 방북단을 파견했다. 켈리가 평양에서 들고 온 것은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설’이었고 그것은 제2 북핵사태의 출발점이었다. 켈리 등의 방북은 실로 절묘한 시기에 단행됐다. 미국은 일본의 북한 접근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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