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 군위안부와 일본인 납치 ⑤-마지막회
아베는 2005년 자민당 간사장대리 때 말했다. “종군위안부는 요시다 세이지가 지어낸 허구다. 그걸 갖고 일본언론이 만들어낸 얘기가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1913년생으로 일제 육군 위안부 모집책이었던 요시다는 일제 패전 뒤 <조선인위안부와 일본인>(1977), <나의 전쟁범죄>(1983) 등을 써서 일제의 범죄를 고발했고 강제연행희생자유골제사송환협회장도 지냈다. 아베가 얘기하는 ‘바깥’은 나라 바깥이요, 주로 남북한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바꿔 말하면, 아무 일도 아니고 남북한에서도 원래 아무 얘기 없었는데, 요시다란 자의 거짓말을 일본언론들이 마구 부풀리는 바람에 원래 없던 ‘종군위안부 문제’가 새로 불거져 나왔다, 그런 허구가 나라망신을 시켜 일본의 국제적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식이다. 아베 등 우익에게 그런 사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일본 우익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한 일본의 재무장, 자위대의 국제무대 입지 확대, 동아시아 역내 정치군사 대국화를 통한 중국과의 패권경쟁에서의 승리다. 이를 위해서는 군대 보유와 교전권을 부정한 헌법 9조를 바꿔야 하고, 그럴려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헌법이 일본 의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2차대전 패전에 따라 승전국 미국이 일방적으로 강요한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선전해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선 일제가 치룬 전쟁이 실은 나쁜 전쟁이 아니었고 일본이 저질렀다는 전쟁범죄라는 것도 승전국이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강요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그것은 일본의 전쟁이 사실은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극단까지 나아간다. 그들이 말하는 ‘보통국가’, ‘정상국가’라는 것은 이처럼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움으로써 지금까지의 비정상, 특수국가 상태에서 벗어나는 걸 가리킨다. 그게 아베가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아베에게 ‘아름다운 나라’ 일본은 미국 등 전승국에 의해 더럽혀지기 전의 영광의 대동아공영권, 대일본제국에 근접해 있다. 북한의 자국민 납치라는 용납할 수 없는 범죄, 국제적 공분을 사기에 족한 아직도 생생한 그 기억을 활용한 과도한 북한 때리기도 그 중요한 장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과도한 납치문제 부각은 일제의 만행을 다시 불러낼 위험성이 있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이 거꾸로 선 진실, 역사 뒤집기가 바로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따위 우익단체의 이른바 ‘자유주의 사관’이다. 아베 총리와 아소 외상, 나카가와 쇼이치 정조회장 등 집권 자민당 실세를 비롯한 주류 우익들이 신봉하는 세계관의 토대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건 그들에겐 독약이며 저주와 같다.
최근 미국과 유럽까지 야스쿠니와 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우익의 자세를 문제삼고 나오는 건 그들로선 몹시 곤란하다. 시민사회를 배제한 전도된 서양 모방(메이지유신)을 여전히 본으로 삼고 있는 일본우익들의 아시아에 대한 뿌리깊은 우월감은 서방에 대한 고질적인 열등감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주변국보다 서방의 문제제기가 더 위험하다. 굳이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의원질의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내각결정이라는 모양새까지 갖추어 사실상 그것을 공식화하는 무리수를 감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베 등이 요시다와 같은 전쟁범죄 ‘커밍아웃’을 반박하는 근거로 드는 것이 하타 이쿠히코(75) 같은 사람들 주장이다. 일본근현대사 연구자 하타는 요시다가 “위안부 사냥이 자행됐다”고 한 제주도를 다녀온 뒤 <위안부와 전장의 성>이라는 책을 썼다. 거기서 하타는 제주도민이 “이 섬에서 인간사냥이 벌어졌다면 소동이 일어나 누구라도 알고 있을 터인데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며 요시다 증언이 허구라고 주장했다. 나중에 요시다는 “인간사냥을 한 장소는 창작을 섞었다”고 고백했으나 인간사냥 자체를 부인한 적은 없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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