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동의 동서횡단 / 군위안부와 일본인납치①
전혀 다른 문제 같지만, 일본의 조선인 위안부 강제동원, 즉 성노예화 문제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서로 얽혀 있다. 그것도 매우 밀접하게. 특히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를 다루는 자세나 방식, 정치적 의도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파생시킨 총체적 정세변동 차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 두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으로 귀결된 뒤틀린 근대가 낳은 쌍생아이며,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는 근대를 극복하고 제대로 된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구체화할 수 없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꼬여만 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죄악이다. 일본과 세계가 비난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보다는 문제의 성격상 오히려 더 양호한 면이 있다. 그것은 북한이 그 범죄사실을 시인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인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지도자가 구두방식이지만 사죄에 재발방지 약속도 했고, 생존자들을 귀향시키기까지 했다. 남은 문제가 많더라도 이 정도면 해결의 가닥은 잡힌 거나 진배없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엉뚱한 방향으로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왜 그럴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좀 더 과거의 일로, 가해 당사자들이 대부분 사망했고 현일본 지도부가 그들의 후예들로 교체됐다는 차이는 있지만, 역시 국가 차원에서 강압적으로 저지른 비극이었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라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지금의 일본 지배그룹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문제는 이미 60여년 전에 끝난 과거사가 됐어야 함에도 지금까지 현대사로 남아 있다. 북한의 납치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자행된 이 만행에 관한 아베 신조 총리의 얘기는 종잡기 어려울 정도로 왔다갔다 하지만, “강제성의 증거가 없다”거나 “날조된 허구”라거나, 또는 미 하원이 대일 결의안을 채택하더라도 “사죄하지 않겠다”는 그의 최근 발언들만 들어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왜, 무엇 때문에 문제들이 이렇게 꼬여만 갈까? 앞으로 몇차례 이에 관해 생각해보자.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기본적 견해는 1993년 8월4일의 고노 관방장관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아베 신조 일본총리는 그렇게 확인했다. “내 내각에서 변경할 일이 아니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일 그는 맥락이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었던 것은 사실 아닌가? 정의가 바뀐 것을 전제로 생각해야 한다.” 고노 담화는 “(군 당국의 요청을 받은 알선)업자들이 혹은 감언이설을 농하고, 혹은 겁을 주는 등의 형태로 본인들의 뜻에 반해 모집하는 케이스가 많았으며, 또한 관헌 등이 직접 그 일에 가담하는 등의 케이스도 있었다.”며 강제성을 인정한 전제 위에 반성사죄했다.
강제성이 없었다면서 반성하고 사죄할 일이 뭐란 말인가? 아베가 2005년 자민당 간사장대리 시절에 위안부문제가 지어낸 허구라고 얘기한 것은 아예 일본군 위안부 존재 자체의 부정이다.
아베식 논리대로라면, 김학순 할머니 등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갔던 수많은 피해자들 증언은 모두 만들어낸 얘기다. 위안부 동원책이었다가 나중에 참회한 일본육군 출신 요시다가 만들어내고 일본언론이 떠들어댄 허구를 근거로 마치 자신이 그 직접적인 피해자인양 거짓말을 하거나, 허구를 사실로 믿고 자신을 그 당사자로 착각하는 피해망상자, 곧 정신병자라는 얘기다. 따라서 모두가 착하게 잘 사는 일본 돈을 노린 부도덕한 음모요 계략이라는 게 일본 우익들의 사고다. 과연 어느쪽이 정신병자일까?
한승동 선임기자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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