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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전후 레짐’의 청산
일본 아닌 우리의 숙제다

등록 2007-08-17 19:18수정 2007-08-17 21:05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한승동의 동서횡단

전후(아시아태평양전쟁 후)의 일본 사회 시스템이 전전과 크게 다른 것은, 경제적 자원이나 인적 자원 배분에서 전전 일본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군사부문 배분을 모두 민생 쪽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그것이 일본 역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둔, 일제의 전체 존속기간보다 더 긴 평화 속의 번영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전전의 일본에선 평상시 전예산의 거의 절반이 군사부문에 투입됐다. 전쟁 때는 대부분의 예산과 인재를 거기에 쏟아부었다. 만약 전후 일본이 일찍부터 군을 부활시켜 거기에 많은 경제 자원과 인적 자원을 계속 투입했다면 일본에도 미국처럼 군산복합체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지금 미국은 한마디로 ‘전쟁 기계(머신)’ 국가다. 미국의 과학도 기술도 실은 절반 이상을 군사관계 예산이나 인재에서 충당한다. 특히 로봇, 핵융합, 슈퍼컴퓨터, 우주항공 등의 첨단기술은 대부분을 군사예산에서 충당한다. 군산복합체를 만들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력을 쌓고 경제기적을 이룩한 일본의 성장모델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헌법, 특히 제9조라는 ‘전후 레짐(체제)’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그 체제를 내팽개치려는 자들이 나라의 권력 중심에 앉는 시대가 돼버렸다.

이런 얘기는 걸출한 일본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가 월간지 〈겐다이(현대)〉 7월호에서 아베 신조 개헌정권에 ‘철저항전’을 선언한다며 한 얘기다. 다분히 7월 말의 참의원 선거를 겨냥했을 법한 다치바나의 전후 체제 옹호 캠페인이 신묘한 힘을 발휘했던지, 7월30일 일본 신문들은 ‘자민당, 역사적인 대패’라는 대문짝만한 제목들을 달았다. 물론 아베의 자민당 대패엔 여러 다른 이유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전후 체제 변경이 그리 만만한 게 아님이 재확인됐다. 8월8일 토머스 시퍼 주일 미국대사가 사상 처음 민주당 본부를 찾아갔고, 그가 오는 11월1일로 기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이를 근거로 자위대가 중동지역 미군활동을 현장 지원하고 있다) 연장을 위한 협조요청을 하자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미국이 유엔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쟁을 벌였다며 보기좋게 거절했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의 전쟁이라고 조지 부시 대통령이 얘기했다. 일본의 직접적인 평화·안전과 관계없는 곳에 부대를 파견하고 미국 등과 공동작전을 펼 순 없다.” 〈아사히신문〉 다음날 사설은 이를 두고 “지금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며 반겼고, 〈요미우리〉 〈산케이〉는 오자와를 비판했다.

그런데 정작 ‘전후 레짐’ 청산을 외쳐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닌가. 다치바나가 망국적 요소로 지적한 ‘경제 자원과 인적 자원의 군사부문 쏟아붓기’의 세계적 모범사례가 바로 한반도 아닌가. 전체 민족 단위로 생각하면 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남북 분단과 대치라는 전후 체제는 다치바나가 지적했듯이 한 국가나 민족이 어떻게 하면 망가지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미국이 제공한 전후 체제 덕에 기사회생한 일본인 다수가 그걸 붙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걸 위해 일방적으로 강요당한 전후 체제 때문에 공동체의 에너지를 탕진한 우리는 다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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