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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역사의 ‘기록자’ 아닌 ‘왜곡자’

등록 2008-07-11 19:17수정 2008-07-11 22:03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김지석의 종횡사해

일상적으로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라고 할 때의 ‘이해’에는 크게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말 그대로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경우다. 여기서는 말의 논리성 또는 행동의 합리성이 문제가 된다. 대개 미숙함이나 서로 낯섦, 소통 부족이 원인이다. 둘째,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적대적 의도의 표현이다. ‘나의 가치관에 비춰볼 때 용납할 수 없다’는 뜻으로, 문제가 되는 건 합리성이 아니라 윤리적·정치적 판단이다. 셋째,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다. 생활 조건이나 세계관이 너무 달라 정서적 교감을 느낄 수 없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수많은 개인과 집단이 만들어나가는 역사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나마 첫째 경우라면 공부와 노력을 통해 많은 부분 해결할 수 있다. 둘째 경우도 자신의 생각을 일단 접고 객관적 입장을 엄격하게 고수하려 함으로써 어느 정도 풀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셋째 경우는 아무리 애쓰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과학은 법칙적 설명을 추구하지만, 역사학에서는 여기에 더해 이해가 필수적이다. 독일 역사학자 빌헬름 딜타이(1833~1911)의 말처럼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역사)을 이해한다.” 이해는 상대 속에서 나를 재발견하는 것으로, 정신(의도)과 공감을 열쇳말로 한다. 그런데 이해를 중시하면 다양한 관점을 용인하게 되고, 이는 상대주의적 역사 인식으로 이어지기 쉽다. <역사학의 철학>(민음사 펴냄)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관점의 다양성과 객관적 역사 인식의 양립을 제시한다.

역사 인식에서 하나의 관점과 해석만이 타당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관점과 해석이 동일한 값을 갖는다는 주장도 성립하지 않는다. 사실을 전혀 밝히지 못하는 관점이 있는 반면 많은 사실을 드러내는 관점도 있기 때문이다. 여러 관점의 상호 비교와 융합을 통해, 또는 새 관점의 창안을 통해 더 나은 해석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만큼 역사의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관점과 해석이든 역사의 한 측면을 비출 뿐이라는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 안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 역사는 이런 다양한 관점이 합쳐져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히면서 더 정확하게 기록되고 재현된다.

흔히 언론 기능의 한 축으로 ‘역사의 기록’을 꼽는다. 언론을 들춰보면 그 시대 역사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나라 언론이 역사 기록자 구실을 제대로 하는지는 의문이다. 5월 초부터 이어진 촛불집회에 대해 몇몇 언론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으로 재단해 매도한 것이 그 사례다.


역사 이해에서 관점이 불가피하듯 언론 또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언론의 관점은 무엇보다 어떤 기사를 어떤 비중으로 보도하는지에서 드러난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관점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어도 그 속에서는 사실을 가감 없이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언론은 역사 왜곡자가 될 수밖에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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