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클리닉 /
어김없이 5월은 오고 ‘광주’는 여전히 살아 있다. 5·18에 대한 평가가 처음엔 ‘광주사태’였다. 그러나 많은 지연이는 어머니와 함께 상담실을 찾았다. 지연이는 딱히 문제를 일으키진 않지만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과외며, 학원이며 적극 후원을 해주고 있으니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도무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반항을 하는 것도 아니고, 책상에 계속 앉아있는데 도무지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이야기만으로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힘들었다. 몇 가지 심리검사를 해보았다. 뜻밖에도 우울한 상태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잠만 자고 싶고, 심한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지연아, 검사결과를 보니까 마음이 많이 우울한 것으로 나왔네. 그럴 땐 책상에 앉아 있어도 멍하니 있게 되고 집중도 잘 안 되고 그랬을 텐데…. 지연이가 그렇게 힘들다는 거 엄마한테 이야기 해본 적 있니?”
지연이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모든 정성을 다 쏟고 있고, 자신만이 어머니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힘들단 내색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머니는 지연이를 적극 후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작 지연이는 어머니의 짐까지 자신이 떠안고 있었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도 못할 만큼….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의 꾸지람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나는 지연이와 함께 ‘책임 파이 그리기’를 해보았다. “지연아, 지연이가 마음이 좀 많이 힘들잖아. 공부도 안 되고.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야. 이 동그라미 안에 그런 이유들을 적어보고 얼마만큼씩 자리를 차지하는지도 한번 그려볼래?” 지연이는 동그라미의 대부분을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내용에 할애했다. 그리고 옆에 조그맣게 ‘엄마가 잔소리를 좀 안 했으면’이라는 말도 적었다. 나는 잠시 지연이의 어머니가 되어 주었다. 지연이가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도록. 목소리는 작았지만 지연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보다는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연습은 한번만으로는 안 된다. 조금 더 여러 번의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과 어머니의 짐을 모두 자신이 지는 것은 다른 것이며,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 되는 것과 무조건 어머니 말대로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어야 비로소 공부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어머니의 것이 아니고...
지연이의 어머니에게도 숙제를 내드렸다. 이번 한 주 동안은 가능한 한 지연이에게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만하고 칭찬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도록. 꾸지람이 약이 되려면 친밀함과 신뢰의 끈이 먼저 연결되어 있어야 그 약효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
신을진/한국싸이버대 상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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