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클리닉 /
정미는 고3 수험생이 된 것에 대해 압박감이 심했다. 자다가도 자신이 고3이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잠이 확 깬다고 하였다. 주변에서는 격려하려고 전설에나 나올 법한 선배들의 고3 수기를 앞다투어 이야기해 주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더 커졌다. 공부하다 보면 다른 과목이 걱정돼 어느 새 이 과목 저 과목 책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기 일쑤였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은 많지만,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손만 대다가 시간이 다 간다는 것이다.
정미는 이른바 ‘고3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미의 스트레스는 ‘고3이라면 이쯤은 되어야지’라는 주변의 기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공부를 하다 보면 어디 그런가. 아직 정미는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인 ‘고3 새내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고3 졸업생’ 수준을 기대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먼저 정미와 함께 시험을 볼 때까지 몇 달이 남았는지를 적어보았다. 4월, 5월, 6월…. 그리고 거꾸로 올라오면서 최종 마무리 한 달을 남겨두고, 각 달별로 어떤 과목에 더 집중할지를 적어보았다. 또한 날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어떤 공부를 할지 그 분량을 구체적으로 적고 시작하기로 약속도 하였다. 물론 이렇게 계획을 세운다고 반드시 그대로 공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중간에 변경될 수 있고 계획한 것을 다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시험 보는 그 순간이 되기까지 아직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남았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정미가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다.
또 한 가지, ‘생각 일기’를 적도록 하였다. 불안이 심해질 때 정미는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으니 시험 보면 망칠 거야’, ‘부모님이 재수를 허락할 리도 없는데 이렇게 시험을 망치면 난 대학은 영영 틀렸어’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계획 세우는 과정을 통해 불안감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이런 극단적인 생각으로 불안이라는 불씨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는 한, 불안은 언제 그 막강한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 특히 계획대로 공부가 되지 않을 때, 공부를 했는데도 모르는 문제를 만나게 될 때 등이 위기의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정미와 함께 불안을 낮출 수 있는 생각의 연료를 찾아보았다. ‘모르는 것을 이렇게 발견했으니 참 다행이야. 아직 공부할 시간은 있잖아’, ‘결과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보자’ 등등. 위기의 순간에 불안의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인가, 또는 수그러들게 할 것인가는 스스로에게 어떤 생각의 연료를 제공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신을진/한국싸이버대학교 상담학부 교수 ejshin815@hanmail.net
신을진/한국싸이버대 상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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