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매거진 Esc] 탁현민의 말달리자
지난주 ‘결국 첫 만남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 나왔나 싶을 때 마지막으로 꺼내는 히든카드는 □(네모)다’라고 썼습니다. 네모 안에 들어갈 다양한 답변을 보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리며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포털사이트에 낚이지 않는 칼럼은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더군요. 소통이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즉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좀더 잘 해보렵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네모는 ‘밥 먹으러 간다’와 ‘자리를 옮긴다’입니다. 상황과 분위기의 반전이 새로운 소재 찾기에 효과적이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그 다음으로는 ‘웃는다’, ‘미소를 짓는다’입니다. 이것으로 조금의 시간을 벌겠지요. 그러나 첫 만남에서 상대가 어느 순간 아무 말 않고 웃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좀 모자라 보일 것 같군요. ‘마술을 시작한다’도 두 분 있었습니다. 나름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실수했을 때의 어색함은 만회할 길이 없습니다. 기술에 의존하여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아마 마술이 끝나고 나면 마법이라도 부려야 할 것입니다.) 그 밖에 ‘포기한다’, ‘돈을 흔든다’ 등등 영양가 없는 답변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네모보다 가장 최악의 네모는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였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히든카드는 ‘묻는다’가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거나 더 할 말이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는 대부분 일방적으로 떠들 때입니다. 그건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의 전제는 소통입니다. 끊기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것도 좋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서로가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겁니다. 대화는 나누는 것이라지 않습니까?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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